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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수희씨 이야기 (168)
수희씨닷컴
쉬울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도 할 수 있다고, 해내야 한다고 늘 마음을 다잡곤 했다. 출산하고 본격적인 육아를 시작한지 이제 48일이다. 십년을 기다려온 아이이기에 기뻤다. 아직도 품안에 안긴 아이를 보면서도 믿기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런데 좀 힘들다. 왜 뱃속에 있을 때가 편하다는 건지, 너도 애 낳아서 키워보면 알거다 그러는 건지 이제 너무 절절하게 알겠다. 육아는 결코 만만치 않은 일이다. 매일 사과하는 초보 엄마 나는 매일 매일 아기에게 사과한다. 근거 없는 자신감 하나 믿고 제대로 준비도 안한 초보 엄마인 나는 아이를 힘들게 한다. 잠투정 하는 아이를 달래는 것도 미숙하고, 목도 가누지 못하는 아이를 목욕시키는 일은 늘 진땀난다. 때 맞춰 먹이는 일도 쉽지 않다. 아이는 만족하지 못하는 눈치..
똑같은 가운을 입고, 머리는 질끈 묶고, 화장기 없는 맨 얼굴에 총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흐릿한 눈으로 여자들이 복도를 걷는다. 그 여자들에 가슴팍에는 신생아가 안겨있다. 신생아실 문 앞에서 “분유 좀 타주세요” 하며 간절히 외치곤 한다. 젖 달라 우는 아이를 달랠 여유가 없는 초보 엄마들이기 때문이다. 산후조리원에 들어온 지 이제 열흘이 됐다. 수술하고 입원한지 5박 6일째 퇴원하고 바로 조리원으로 왔다. 산후조리원하면 산후에 몸을 추스르며 회복하는 데에 도움을 주는 곳인줄 알았는데, 첫날부터 내가 잘못 알았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머무는 산후조리원은 모자동실이다. 아이를 하루 종일 데리고 지내면서 아이에 리듬에 엄마가 맞추는 연습을 하는 곳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아이를 옆에 데리고 있어야 ..
어느새 “나도 저럴 때가 있었지” 하는 나이가 됐다. 마냥 어리기만 하다고 생각하는데 나보다 훨씬 어리고 빛나는 청춘들이 도처에 수두룩하다. 나, 나이 먹었다. 마흔을 넘겼으니 이제 너는 청춘이 아니라고 해도 꼼짝없이 수긍해야 할 판이다. 나이 먹었다고 꿈도 사라지는 건 아니라지만, 지금도 충분히 행복하고 열정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청춘은 부럽기만 하다. 영화 은 40대 중반에 부부와 20대 부부의 삶을 대비시켜 보여주며 젊음이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40대 부부인 조쉬와 코넬리아는 여러 번 임신에 실패를 겪긴 했지만 나름 ‘괜찮아보이는’ 듯한 삶을 산다. 조쉬는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8년째 작품을 끝내지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한때는 유능하다는 소릴 좀 들었다보다. 코넬리아의 아버지 역시 권위 ..
부었다 가라앉았다를 반복하는 손과 발에도, 하루가 다르게 부르는 배에도 어느 정도 적응했다. 잠잘 때 불편함도 느끼지만 이제 머지않았다는 생각에 참을만하다. 출산에 대한 고통을 상상하는 것도 고통이라기보다는 참아낼 수 있다는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며 호흡한다. 벌써 임신 35주째다. 시간 참 빠르다. 임신에 대한 기쁨과 행복감에 취해 보냈는데 어느새 출산이 코앞이다. 마음이 바빠지기 시작했다.사실 좀 막막하다. 내게는 ‘정보’가 별로 없다. 인터넷을 뒤져보고, 책을 보고, 가끔씩 출산과 육아를 경험한 언니들에 경험담을 듣지만 고민은 계속 쌓이기만 한다. 이래서 엄마가 되기가 힘든가보구나, 싶다. 사소한 아니 심각한 고민을 이야기하자면 끝이 없다. 출산용품 준비부터가 난관이다. 우선 내가 준비한 것은 베냇저..
‘잔인한’ 4월이다. 이제 싯구가 아니라 사실이다. 봄이 와도 춥기만 하고, 꽃을 보고 맘껏 웃을 수도 없다. 노란색 개나리가 마치 세월호 노란 리본 같아 더 마음이 아파오기도 했다. 이제 우리나라에 4월은 세월호 참사를 빗겨나서 지나갈 수 없다.일 년이 지났다. 그런데 밝혀진 게 아무 것도 없다. 오히려 상황은 더 악화된 듯 하다. 지난 주말 서울에서 집회가 예정되었는데 경찰이 광화문 일대를 차벽으로 둘러싸며 시민들에 통행을 방해하고 캡사이신 물대포를 쏘아대고 유가족을 강제적으로 진압했다. 여기저기 SNS에 올라오는 광화문 소식을 들으면서 ‘이게 정말 사람 사는 세상인가, 정말 이래도 되는 것일까’ 하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현장에 가지 못한 나는 세월호 참사 관련 뉴스를 훑어보며 겨우 눈물이나 ..
통통이를 만난 지 이제 31주가 넘었다. 입덧이 끝나고 나서는 정말 좀 살 것 같았다. 임신성 당뇨 검사도 무사히(?) 끝내고 통통이는 무럭무럭 잘 자란다. 입덧이 지나면서는 속도 편안해지고 배는 나오기 시작했지만 몸도 가볍고 컨디션도 참 좋았다. 이렇게 임신에 대한 행복감이 커져갈 무렵 태동이 찾아왔다. 27주부터는 아주 격렬한 태동을 많이 느끼고 있다. 태동, 참 신기하다. 어떨땐 꿀렁꿀렁하기도 하고, 어떨 땐 발을 막 구르듯이 일정한 리듬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 전에는 주로 밤에 태동이 많았는데 요즘은 시도 때도 없이 태동을 느끼곤 한다. 엊그제 병원 점기검진일이었다. 의사선생님은 초음파를 보시더니 양수상태가 정말 좋다며 아이가 잘 클 수 있는 환경이라고 말해주었다. 우리 통통이가 잘 자라고 맘껏 ..
여동생에 시어머니께서 암으로 고통받다 설 전날에 돌아가셨다. 평생 농사를 지으시며 부지런하게 살아내신 분이다. 음식솜씨가 좋으셨고, 직접 담근 된장 맛도 일품이었다. 나는 쌀이며 된장, 들기름까지 종종 얻어 먹곤 했다. 시골집에도 한두 번 놀러갔더랬다. 어려워하지 말고 자주 오라하시던 모습도 떠오른다.지지난해 봄이었다. 내가 쑥개떡이 먹고 싶다고 동생에게 지나가듯이 말했나보다. 어느 날 동생이 어머니가 내게 꼭 전해주라고 했다며 쑥이 한아름 담긴 비닐 봉투를 건넸다. " 언니! 어머니가 이거 주시면서 언니 아기 꼭 생겼으면 좋겠다고 하시네. 몸도 아프신데 뜯은 거니까 버리지 말고 잘 해먹어" 라고 동생이 말했다. 울컥했다. 그 어른에게 늘 받기만 한 듯 해 죄송했다. 그런 어른이 돌아가셨는데 사람에 도리..
우리 통통이가 우리에게 온 지 어느새 20주가 지났다. 입덧도 가라앉고 배도 부쩍 나왔다.여기까지 오면서 내 몸에 생기는 변화는 참으로 놀랍다. 배가 하루하루 불러오고 가슴도 커진다. 이런 변화들이 마냥 좋지많은 않다. 붓기도 하고, 피곤해보이기도 하고, 몸이 무거워지는 듯도 하다. 몸무게가 하루 하루가 다르게 늘어가니 대체 얼마나 더 몸집이 커질까 싶어 겁도 난다. 사실 많이 먹지도 않는데 몸무게가 많이 느는 것 같아 걱정이다. 그래도 통통이를 생각하면 이런 걱정 따위는 참 별게 아니다. 나를 엄마로 만들어준 통통이가 정말로 고맙기 때문이다. 우리 통통이는 딸이란다. 남편은 성별을 미리 알 필요가 있냐고 했지만 나는 궁금했다. 우리 부부에게 찾아온 기적같은 이 아이가 어떤 아이일지...... 사실 기적..
사막을 건너는 법을 알고 있다면 굳이 건너려하지 않을 것이다. 모르기 때문에 걷는 것이리라. 그 길에 누구를 만나게 될지, 어떤 일이 벌어질지, 끝이 있기나 한 것인지도 모르기 때문에 시작할 수 있다. 셰릴이 제 몸집보다 더 큰 배낭을 간신히 메고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 (PCT) 하이킹에 나선다. 멕시코 국경에서 캐나다 국경까지 이르는 엄청난 트래킹 코스다. 사실 영화를 보러 가면서 트레킹을 떠나는 여정이니까 그 광경을 보기 위해서라도 큰 스크린으로 봐야겠다 마음 먹었다. 그러나 영화를 보는 내내 엄청난 풍경에 마음을 빼앗기기 보다는 셰릴에게 온 마음을 내주어야 했다. 악마의 코스라 불리는 길,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 그녀는 너무나 피폐해 보인다. 얼마나 힘든 삶을 건너왔기에 저런 얼굴을 하고 있는 걸까..
총 1893권888책, 한글로 번역하면 320쪽짜리 책 413권에 달한다는 , 10여년에 걸쳐 만화로 그려낸 박시백의 을 나는 새해 들어 한 달도 채 안 되는 시간 안에 읽었다. 오백년 조선왕조가 어떻게 시작하고 망했는지를 아주 짧은 시간을 투자해 읽었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이 회자될 때 언젠가는 읽어야지 마음먹었지만 선뜻 내키진 않았다. 정말 재밌을까 싶기도 했고, 만화로 본다는 게 그다지 끌리지도 않았다. 긴 겨울밤에 좀 지루해도 괜찮겠지 싶어 야심차게 시작했다.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오히려 그냥 글로만 돼 있었으면 읽다 포기했을 것이다. 인물들이 생생하게 살아있고 사건을 더 실감나게 보여주는데 그림이 톡톡히 한 몫을 차지했음을 알 수 있다. 은 만화로 보는 게 훨씬 낫다는 생각도 들었다. 중간중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