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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희씨 이야기/책읽기

언젠가 나도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

수희씨 2015. 2. 23. 10:57

여동생에 시어머니께서 암으로 고통받다 설 전날에 돌아가셨다. 평생 농사를 지으시며 부지런하게 살아내신 분이다. 음식솜씨가 좋으셨고, 직접 담근 된장 맛도 일품이었다. 나는 쌀이며 된장, 들기름까지 종종 얻어 먹곤 했다. 시골집에도 한두 번 놀러갔더랬다. 어려워하지 말고 자주 오라하시던 모습도 떠오른다.

지지난해 봄이었다. 내가 쑥개떡이 먹고 싶다고 동생에게 지나가듯이 말했나보다. 어느 날 동생이 어머니가 내게 꼭 전해주라고 했다며 쑥이 한아름 담긴 비닐 봉투를 건넸다. " 언니! 어머니가 이거 주시면서 언니 아기 꼭 생겼으면 좋겠다고 하시네. 몸도 아프신데 뜯은 거니까 버리지 말고 잘 해먹어" 라고 동생이 말했다. 울컥했다. 그 어른에게 늘 받기만 한 듯 해 죄송했다. 그런 어른이 돌아가셨는데 사람에 도리를 못했다. 내게 아기가 생겨 삼가야 할 것이 많기 때문이다. 설날 저녁 집에 홀로 있으며 조용히 기도했다. 부디 좋은 곳에 가시라고.


부모가 되기 전에는 부모 마음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 다는 말이 있다. 실로 그렇다. 나 역시 시부모님이나 친정 부모님에 마음을 반에 반도 헤아리지 못하고 살아왔다. 그런 내가 엄마가 된다고 생각하니 덜컥 겁도 나고, 세상에 모든 어머니들처럼 그렇게 자식에게 할 수 있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이번 설 연휴에는 그 어느 때보다 어머니 생각과 태어남과 죽는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고 죽기마련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세상에 어떤 이치로 나에게 새 생명이 찾아오고 또 누군가는 이 세상을 저버리게 되는 것인지 새삼스러웠다. 복잡한 마음을 달래며 책을 찾아 읽는다.

태교 삼아 읽을 요량으로 산 그림책이 있다. <사랑하는 딸에게 언젠가 너도>(피터레이놀즈 그림, 엘리슨 맥기 글)라는 책이다. 길지 않으니 전문을 옮겨보겠다.

어느 날 네 손가락을 세어 보던 날 그만 손가락 하나하나에 입 맞추고 말았단다.

첫눈이 내리던 날, 널 하늘높이 치켜 올리고 가만히 지켜보았지. 네 고운 뺨 위에 흰 눈이 내려앉는 걸.

어느 날 우리가 함께 길을 건너던 날 넌 내손을 꼬옥 붙들더구나.

조그만 아기였던 네가 이제 아이가 되었구나.

이따금 난 지켜본단다. 네가 잠자는 모습을 꿈을 꾸는 모습을. 그리고 나도 꿈을 꾼단다

언젠가 너는 푸른 호수 그 맑은 물 속으로 뛰어들겠지.

언젠가 너는 깊은 숲 그 서늘한 그늘 속으로 들어가 보고 싶겠지.

기쁨이 가득한 순간도 있을 거야. 기쁜 나머지 두 눈이 반짝반짝 빛나겠지.

언젠가는 심장이 터지도록 빨리 그리고 멀리 뛰는 날도 있을거야.

언젠가 너는 하늘 높이 날아오르겠지. 전에는 생각도 못했을 만큼 높이 높이.

언젠가는 슬픔에 겨워 고개를 떨구고 앉아 있는 날도 있을 거야.

언젠가 네가 노래를 부르면 바람이 너의 노래를 멀리멀리 싣고 가겠지.

언젠가 나는 보고 있겠지. 나에게 손을 흔드는 너의 모습을. 네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지켜보겠지.

언젠가 그런 날이 올 거야. 그토록 크게 느껴지던 이 집이 이상하게 작게 느껴지는 날이.

언젠가 느끼게 될 거야. 네 등에 온 몸을 맡긴 너의 작은 아이를.

언젠가 나는 네가 네 아이의 머리를 빗겨 주는 걸 보게 되겠지.

언젠가, 지금으로부터 아주 아주 먼 훗날, 너의 머리가 은빛으로 빛나는 날

그 날이 오면, 사랑하는 딸아. 넌 나를 기억하겠지.”

딸에게 주는 엄마의 이야기만 있는 게 아니다. 소설가 최인호의 <나의 딸의 딸>도 잔잔하게, 눈물 나게 읽었다. 최인호는 자신의 딸이 자라는 과정 과정에서의 느낀 것을 사랑을 담아 써내려갔다. 그리고 그 딸이 낳은 딸 손녀를 통해서 온전한 사랑을 배웠음을 고백한다. 그 책 가운데 한 대목이다. “이세상의 모든 딸들이 볼 수 없는, 오직 이 세상의 엄마만이 볼 수 있는 새 생명의 눈이 떠지고 있는 중이란다. 네 엄마도 한때는 딸이었고, 그 딸은 너를 낳아 엄마가 되었다. 그 엄마가 이제는 할머니가 되었단다. 이제 네 딸도 언젠가는 엄마가 되어 또 다른 딸을 낳게 될 것이다. 네 엄마의 엄마가 그러하였듯이. 그 엄마의, 엄마의, 엄마의 엄마가 그러하였듯이. 그것이 바로 우리들이 살아가는 인생이란다.(p.219)"

이 글들을 읽으면서 우리 엄마도 그랬겠지 싶어 마음이 일렁거렸다. 곧 태어날 내 딸에게 나도 저런 마음을 갖게 될 테지 싶어 설렌다. 얼마나 사랑스러울까, 얼마나 자랑스러울까.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에게 내 온 마음을 전하고 싶어 벌써 안달이 났다. 이토록 충만한 행복감을 안겨주다니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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