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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수희씨 이야기/삶의 향기 (87)
수희씨닷컴
어느새 “나도 저럴 때가 있었지” 하는 나이가 됐다. 마냥 어리기만 하다고 생각하는데 나보다 훨씬 어리고 빛나는 청춘들이 도처에 수두룩하다. 나, 나이 먹었다. 마흔을 넘겼으니 이제 너는 청춘이 아니라고 해도 꼼짝없이 수긍해야 할 판이다. 나이 먹었다고 꿈도 사라지는 건 아니라지만, 지금도 충분히 행복하고 열정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청춘은 부럽기만 하다. 영화 은 40대 중반에 부부와 20대 부부의 삶을 대비시켜 보여주며 젊음이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40대 부부인 조쉬와 코넬리아는 여러 번 임신에 실패를 겪긴 했지만 나름 ‘괜찮아보이는’ 듯한 삶을 산다. 조쉬는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8년째 작품을 끝내지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한때는 유능하다는 소릴 좀 들었다보다. 코넬리아의 아버지 역시 권위 ..
사막을 건너는 법을 알고 있다면 굳이 건너려하지 않을 것이다. 모르기 때문에 걷는 것이리라. 그 길에 누구를 만나게 될지, 어떤 일이 벌어질지, 끝이 있기나 한 것인지도 모르기 때문에 시작할 수 있다. 셰릴이 제 몸집보다 더 큰 배낭을 간신히 메고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 (PCT) 하이킹에 나선다. 멕시코 국경에서 캐나다 국경까지 이르는 엄청난 트래킹 코스다. 사실 영화를 보러 가면서 트레킹을 떠나는 여정이니까 그 광경을 보기 위해서라도 큰 스크린으로 봐야겠다 마음 먹었다. 그러나 영화를 보는 내내 엄청난 풍경에 마음을 빼앗기기 보다는 셰릴에게 온 마음을 내주어야 했다. 악마의 코스라 불리는 길,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 그녀는 너무나 피폐해 보인다. 얼마나 힘든 삶을 건너왔기에 저런 얼굴을 하고 있는 걸까..
76만명이 ‘카트’를 봤다. 백만을 넘지 못했다. 손익분기점을 넘으려면 160만명에 관객이 들어야 한다는데 절반도 채 안됐으니 상업적으로는 성공하지 못한 셈이다. 그러나 카트가 거둔 성과를 고작 관객수로 헤아리긴 어렵다. 나는 영화 카트가 성공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처음 영화를 보기 전에는 사실 걱정이 많았다. 과연 노동자들 이야기에, 파업하는 이야기를 상업 영화로 잘 풀어낸다는 게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작품을 보기 전에는 미리 걱정도 했다. 너무 뻔하게 그리지 않았을까. 영화를 보고 난 후에는 내 얄팍한 걱정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지 깨달았다. 카트를 만든 부지영 감독은 너무나 멋지게 작품을 만들어냈다. 여성 감독이 만든 여성 노동자들에 이야기 영화 ‘카트’는 실제 이랜드 홈에버 비정규직 노..
“너 요즘 외박이 잦더라. 피임은 네가 알아서 해라. 미혼모가 돼도 네 인생, 배불러 결혼해도 네 인생. 엄마는 모른다”. 최근 TV 드라마에서 나온 엄마의 대사다. 결혼을 하지 않고 남자친구네 집에서 외박을 밥 먹듯이 하는 딸에게 엄마는 쿨하게 네 인생이니 알아서 하라고 말한다. 드라마에 이런 대사가 자연스럽게 나오는 걸 보니 세상 참 달라졌다. 드라마 속 엄마처럼 요즘 엄마들은 딸의 남자관계에 이처럼 쿨할까? 어느 날 내 딸이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만 낳겠다고 한다고 해도 이처럼 쿨할 수 있을까? 여기 스무 살부터 아이를 낳고 싶어 하던 문숙이 엄마는 “어쩔 수 없지. 내가 도와줘야지. 애가 애를 낳는데 어쩔 수 있나” 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 영화 는 미혼모 인생을 선택한 여동생과 그런 ..
프란치스코 교종이 한국을 떠났다. 4박5일간 프란치스코 교종이 보여준 사랑은 놀라움 그 자체다. 신자가 아닌 나같은 이에게도 감동은 고스란히 전해졌다. 무엇보다 교황이 세월호 유가족들을 챙기는 모습이 참 고마웠다. 기사들을 보면서 또 눈물을 흘렸다. 세월호 유가족분들도 치유를 받았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다행이다. 지옥같은 시간들일텐데 짧은 순간이나마 위로가 되었다니...... 지난 15일 서울 광화문에 갔다. 이튿날 열릴 시복식 준비가 한창인 광화문에는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영화 때문이었을까. 이순신 장군 동상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도 꽤 많았다. 이순신 장군 동상을 지나 아래쪽에는 유민이 아빠 김영오씨가 단식하는 천막이 있다. 오늘로 36일째 단식을 하고 있는 김영오씨를 처음 봤..
나는 재스민이예요. 이제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어요. 잠시 여기에 앉아서 숨 좀 고를게요. 미처 약도 챙기지 않고 나왔는걸요. 당신들은 나를 비난하겠지요. 잠시만요. 숨이 또 가빠오네요. 당신이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아도 다 알아요. 그렇지만 내게도 다 이유가 있었다구요. 가만 있어봐요. 그이랑 처음 만날 때 들었던 블루문이 흐르는 군요. 이 노래가 흐를 때 우린 운명처럼 만났어요. 못다한 내 이야기를 좀 해도 될까요? 이렇게 묻는 건 나로서도 처음이예요. 늘 내 곁에는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젠 아무도 없군요. 그렇지만 당신이라도 들어줘야 해요.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할까요? 아, 남편 할을 만난 이야기부터 해야겠군요. 입양돼서 한때 행복하기도 했지만 편한 삶은 아니었어요. 내가 꿈꿔왔..
지난 주 목요일, 청주에 세월호 유가족들이 왔다. 청주에 도착한 유가족들은 도지사도 만나고 길거리에서 서명전도 벌이고 기자회견을 하고 저녁무렵에는 촛불집회까지 함께 했다. 나는 유가족 분들을 그날 오전 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자리에서 만났다. 고개를 푹 숙이고 걸어오는 분들을 보는 순간 가슴에서 무언가가 치미는 것 같았다. 눈물도 살짝 났다. 나는 차마 나설 수 없어서 뒷모습만 봤다. 그런데 그 뒷 모습에는 아이들이 살아 있었다. 아이들 이름이 하나하나 적혀있는 티셔츠를 입은 2학년 3반 학부모님들이다. 아, 얼마나 힘들었을까. 신문이나 방송 뉴스로 세월호 사건을 접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에 아픔이 느껴졌다. 어머님에 등에서 박예슬 이라는 이름도 눈에 들어왔다. 구두 디자이너가 꿈이라는 예..
“나는 옷을 통해 여성의 몸의 움직임을 바꾸고 생각을 바꾸고 자존심을 갖게끔 노력했다” 한국 패션에 살아있는 역사, 노라노 패션디자이너의 삶을 다룬 영화 를 봤다. 꼿꼿한 허리와 갸냘픈 몸매, 곱게 화장한 얼굴과 길게 붙인 속눈섭, 화려한 장신구.....여든 다섯에도 노라노는 참 멋진 모습이었다. 겉모습보다 그가 옷에 대해 가지고 있는 철학이나 당당하게 열심히 살아낸 삶에 존경심을 갖는 건 영화 속 스타일스트 서영은의 말처럼 당연했다. 서영은은 우리가 코코샤넬이나 비비안웨스트우드에 대해서는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정작 우리나라 패션을 있게한 노라노 디자이너 존재자체에 대해서도 모르고 있었다며 그녀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자 전시회를 기획한다. 영화 는 그 전시회 기획 과정을 보여주는 한 편으로 노라노의 패션에..
내가 경주엘 처음 간 게 국민학교 수학여행. 그리고 중학교,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 다녀왔다. 사실 그 때는 경주의 맛, 멋을 잘 몰랐다. 대학에 들어가 답사로 다녀온 경주도 벅차긴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하루종일 남산을 오르락 내리락했던 기억도 나고, 한 밤중에 불국사를 산책했던 기억도 새롭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도 경주는 2,3년에 한번씩은 찾았다. 경주는 가면 갈수록 좋아지는 내가 좋아하는 곳이 되었다. 대학친구와 갑작스럽게 떠났던 경주도 좋았고, 조카들과 함께 시끌벅적하게 다녀왔던 경주도 좋았다. 우리 가족 모임에서도 경주로 두번이나 단체 여행을 하기도 했다. 재작년 봄 4월에도 가족 여행을 경주로 다녀왔는데.....경주에 봄을 기대하고 떠난 여행길에는 눈이 내렸고, 날씨가 너무 추운 나머지 차안과..
처음엔 그랬다. 하몽을 먹겠다고 남원까지 다녀오자는 게 그럴듯하지 않았다. 뭘 얼마나 먹겠다고.... 그래도 약속을 했기에 길을 나섰다. 금방이라도 뭐가 쏟아질듯한 흐린 하늘 고속도로를 들어서자 마자 가는 비가 차창을 따라 흘렀다. 두시간여를 달려 남원이 가까워지자 온 세상이 하얗다. 입춘 지나 눈쌓인 풍경을 보니 애틋하기까지 했다. 지리산 생햄이라는 말 하나를 잡고 나선 길이다. 여주인은 우리에게 하몽과 한옥을 내주었다. 한옥 마루에 앉아 와인에 하몽을 먹자하니 이런 호사가 어딨나 싶을만큼 살짝 마음이 들썩거렸다. 내리는 눈 때문에 더 그랬는지 모를 일이다. 여주인은 남편(박화춘 박사)이 흑돼지를 연구하는 바람에 생햄을 만들게 되었고, 스페인으로 하몽 맛을 찾아 다녀온 여행 이야길 들려줬다. 버크셔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