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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희씨 이야기/삶의 향기

당신의 '마이플레이스' 찾았나요?

수희씨 2014. 9. 12. 14:27

“너 요즘 외박이 잦더라. 피임은 네가 알아서 해라. 미혼모가 돼도 네 인생, 배불러 결혼해도 네 인생. 엄마는 모른다”. 최근 TV 드라마에서 나온 엄마의 대사다. 결혼을 하지 않고 남자친구네 집에서 외박을 밥 먹듯이 하는 딸에게 엄마는 쿨하게 네 인생이니 알아서 하라고 말한다. 드라마에 이런 대사가 자연스럽게 나오는 걸 보니 세상 참 달라졌다.

드라마 속 엄마처럼 요즘 엄마들은 딸의 남자관계에 이처럼 쿨할까? 어느 날 내 딸이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만 낳겠다고 한다고 해도 이처럼 쿨할 수 있을까? 여기 스무 살부터 아이를 낳고 싶어 하던 문숙이 엄마는 “어쩔 수 없지. 내가 도와줘야지. 애가 애를 낳는데 어쩔 수 있나” 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 영화 <마이플레이스>는 미혼모 인생을 선택한 여동생과 그런 여동생의 선택을 바라보는 가족들에 각기 다른 생각을 들여다보며 그들 만에 가족이야기를 풀어낸다.

영화는 임신을 해서 배부른 문숙이 열심히 운동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앳된 얼굴에 문숙은 마냥 기쁜 모습이다. 전혀 주눅 들어 보이지도 않고 천하태평이다. 그런 동생을 두고 아버지는 그 누구에게 내 딸이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를 낳겠다는 이야길 할 수 없다고 했고, 어머니는 어쩔 수 없지 않겠냐고 말한다. 오빠인 감독 문칠도 아이가 애완동물도 아닌데 너는 정말 잘 해낼 수 있겠느냐고 계속 묻는다.

영화는 문숙이가 아이를 낳고 기르는 모습을 보여주며 문숙이와 문숙이 아이 소울을 통해 가족들의 생각을 펼쳐놓는다. 딸의 임신을 달갑지 않게 받아들였던 아버지도 손자 소울 앞에서는 웃음이 멈추지 않는다. 소울이 이 가족들에 화해모드를 이끌어내는 촉매제 역할을 톡톡히 하는 듯 하다.

문숙이네 부모님은 캐나다로 이민을 선택했다. 아버지는 컴퓨터를 전공해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일했고, 어머니는 한국 회사에서 가해진 여성차별에 부당함을 느끼며 캐나다로 떠났다. 그곳에서 두 부부는 문칠(마이플레이스 감독)과 문숙을 낳고 캐나디언 드림을 이룬다. 그러다 돌연 한국행을 결심한다. 문칠은 초등학교 5학년, 문숙은 초등학교 1학년이었다.

한국 생활은 쉽지 않았다. 두 부부 못지않게 문칠과 문숙도 정체성에 혼란을 겪으며 자라났다. 문칠은 그런대로 잘 적응하는 듯 했다. 공부도 곧 잘하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명문대에 들어갔다. 그러나 문숙은 고등학교도 중퇴를 했고, 대학도 들어가자마자 그만둘 만큼 적응하지 못했다. 그런 문숙은 스무살 무렵부터 자신의 아이를 갖고 싶다고 늘 소망했다.

문숙은 왜 그렇게 아이에게 집착했을까. 문숙은 한국 생활에 잘 적응 못했고, 아버지와도 중학교 때 크게 싸운 이후로 별다른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그저 오빠만이 자신을 이해해준다고 생각하고 소통하는 정도다. 그래서였을까. 문숙은 온전하게 자신을 이해할 수 있는 가족을 만들고 싶었기에 아이를 원한 것으로 보인다.

<마이플레이스> 속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져 산다. 엄마는 미혼모가 된 딸에 양육을 돕기 위해 캐나다로 함께 떠나고 아버지는 끝내 제대로 된 일을 구하지 못한 채 몽골로 봉사활동을 떠나 처음으로 보람을 느끼며 산다. 그 누구보다 잘 적응해 사는 듯 했던 오빠도 대기업을 때려치우고 영화 감독을 선택했다. 그러고 보니 <마이플레이스> 속 가족 가운데 유일하게 자기 욕망에 충실한 사람은 문숙이었다. 나중에 오빠와 아빠도 자신들이 꿈꿔왔던 삶을 선택하면서 자신이 있어야 할 곳과 삶을 선택해 삶의 의미를 찾았다. 그러나 영화 속 문숙이 엄마는 문숙이 엄마로만 존재할 뿐이다. 문숙이 엄마는 자신의 선택 때문에 캐나다를 떠나왔기에 가족에 대한 미안함이 커서 그런지 딸이 스스로한 선택에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소명처럼 여기는 듯 했다.

좌충우돌, 천방지축, 마냥 어리기만 했던 문숙도 아들 소울의 성장과 함께 성장하는 모습을 영화는 보여준다. 비록 아이를 잠재우고 나서야 공부를 할 수 있을 정도로 고단한 삶이긴 하지만 미혼모라는 편견에 갇히지 않고 여러 지원을 받으며 아들도 키우고 공부도 해나간다. 그곳이 캐나다였기에 가능했으리라. 만일 문숙이가 캐나다가 아닌 한국에서만 자라왔다면 미혼모 인생을 감히 선택할 수나 있었을까. 그렇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소울은 자라면서 왜 아버지가 없는지 자꾸 묻게 될 것이다. 영화는 이 부분을 암시하면서 끝낸다.

소울이 유치원에서 가족을 배울 때, 다른 아이들은 부모와 함께 찍은 사진을 낼 때 소울은 삼촌, 할머니, 엄마와 함께 사는 자신이 이상하다고 느낀다. 소울 엄마 문숙은 함께 살면 가족인 거지, 가족에 대한 고정관념을 꼭 아이에게 심어줄 필요가 있느냐고 말하지만 앞으로 소울과 문숙이 거쳐야 할 성장통도 만만치 않을 것임을 예고한다. 소울의 삼촌 문칠은 말한다. 우리가 혼란을 겪은 만큼 경험이 많기에 소울에게 괜찮은 인생선배가 돼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처음엔 이 영화가 미혼모 이야기를 하려나 싶었다. 우리사회의 미혼모에 대한 편견을 꼬집는 이야기말이다. 그러나 영화를 보면서 비록 엄마에 도움을 많이 받지만 자신이 선택한 삶을 당당하게 살아내는 문숙이를 통해 가족들이 각자의 마이플레이스를 찾아 떠나고 서로를 이해하는 이야기라는 걸 알게 됐다.

긴 추석 연휴 끝에 영화 <마이플레이스>는 가족 간에 소통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늘 결혼과 취직 문제 외에는 별다른 안부를 묻지 않는 그런 가족과 친척들 속에서 ‘마이플레이스’를 잃어버렸거나 아예 생각도 못하고 그냥 살아가는 이들에게 안부를 묻는 영화 <마이플레이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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