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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희씨 이야기/책읽기

기록은 위대하다

수희씨 2015. 1. 30. 13:00

1893888, 한글로 번역하면 320쪽짜리 책 413권에 달한다는 <조선왕조실록>, 10여년에 걸쳐 만화로 그려낸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을 나는 새해 들어 한 달도 채 안 되는 시간 안에 읽었다. 오백년 조선왕조가 어떻게 시작하고 망했는지를 아주 짧은 시간을 투자해 읽었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이 회자될 때 언젠가는 읽어야지 마음먹었지만 선뜻 내키진 않았다. 정말 재밌을까 싶기도 했고, 만화로 본다는 게 그다지 끌리지도 않았다. 긴 겨울밤에 좀 지루해도 괜찮겠지 싶어 야심차게 시작했다.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오히려 그냥 글로만 돼 있었으면 읽다 포기했을 것이다. 인물들이 생생하게 살아있고 사건을 더 실감나게 보여주는데 그림이 톡톡히 한 몫을 차지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은 만화로 보는 게 훨씬 낫다는 생각도 들었다. 중간중간에 끼어든 박시백 작가의 유머코드가 섞인 설명과 입담도 재미났다.

학창시절엔 국사 과목도 재밌어했고, 점수도 잘 받았는데 도무지 기억나는 게 없다. 태정태세문단세만 외운다고 역사가 완성되는 게 아니니까. 조선왕조는 또 드라마나 영화 소재로 워낙 많이 나오기에 잘 알고 있다는 착각을 자연스럽게 한다. 박시백 작가 얘길 들어보니 <조선왕조실록>이 보급되면서 더 다양한 소재에 영화나 드라마가 만들어지고 있는 추세란다. 사실 조선시대를 다룬 사극을 보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인물들 연산군, 장희빈, 영조, 정조 시대를 다룬 것들이 거의 다다. 대장금이나 동이 같은 드라마는 실록에 한줄 나와 있을까말까 한 소재로 펼쳐낸 상상력이라니 놀랍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을 읽으니 조선시대가 한 눈에 들어오는 듯 하다. 조선왕조실록을 바탕으로 만들어졌기에 주 내용은 정치가 중심이다. 어떤 상소를 올렸는지, 어떤 정쟁이 있었는지를 꽤 많은 양을 들여 생생하게 소개한다.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였는지, 또 서로 파가 나뉘어 사대부들간에도 얼마나 치열하게 경쟁했는지를 지켜볼 수 있다. 조선시대가 마냥 좋았던 것은 아니다. 외교관계에 있어서는 중국에 사대관계를 끝까지 벗어나지 못했고, 백성들을 수탈하는 관리들의 부정부패 비리도 별다른 대책이 없었다. 각종 세금을 거둬들여 참으로 살기 힘들게 했다. 그런데도 나라를 지키며 살아낸 수많은 백성들에 노력을 보노라면 지금과 별 다를 바 없다는 생각도 한다. 게다가 전쟁이 나서 백성들을 져버리고 도망쳐버리는 왕의 모습도 기막히다. 일제에 스스로 나라를 내어준 대신들에 모습과 무기력한 왕권도 실망스럽다. <조선왕조실록>을 읽으면서 재밌었던 부분은 수렴청정을 했던 여성들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다. 유교중심에 조선사회이다 보니 다소 비판적이었던 해석을 박시백 작가는 최대한 객관적으로 해석해보려고 노력했다. 이 밖에도 기존에 잘 알려졌던 부분에 대해서도 박시백 작가는 새로운 해석을 내놓으려고 애쓴 흔적이 역력했다.

조선왕조실록을 읽으면서 새삼 느낀 것은 조선왕조가 그래도 500년을 이어올 수 있었던 원동력에 하나가 바로 언로를 차단하지 않았다는 점이라는 거다. 왕권이 강력한 시대에도 그렇지 못한 시대에도 왕에 대한 거침없는 비판을 하는 이들이 항상 존재했다. 그리고 융성한 시기를 이끌었던 왕들은 언로를 더 확실하게 보장하는 기관을 만들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서로를 모함하기 위해 하지도 않은 일을 했다고 끊임없이 역적모의를 고발하기도 했지만 왕이 잘못하는 일에 대해선 하나하나 상세하게 비판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또 하나 조선왕조가 망했으면서도 망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는 주요한 근거가 바로 <조선왕조실록>을 남겼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사관들이 왕의 눈치를 보지 않고 모든 걸 기록할 수 있었다는 것은 실로 엄청난 일이다. 권력자라면 자신의 허물을 감추고 싶기 마련 아닌가. 아무리 역사가 승리한 자 위주의 기록이라 할지라도 해석할 여지를 주는 기록 그 자체를 남겼다는 점은 높이 평가해야 한다. 어떻게 흥하고 망했는지를 기록으로 남겨 이렇게 후대에 볼 수 있게 해줬다는 게 놀랍다.

방대한 조선왕조실록을 공부해 시대별로 사건을 구성해 그림에 캐릭터까지 더해 새롭게 해석해 낸 박시백 작가의 노력도 참 고맙다. 이런 이가 있어 나 같은 독자들이 편하게 조선왕조실록을 접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얘길 들어보니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을 몇 번이나 다시 읽는 사람들이 많단다. 아이들에 학습용으로도 인기가 많고, 최근 역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다 보니 더 주목을 끄나보다. 정말 누구나 다 찾아 읽었으면 싶은 마음이 절로 드는 정성이 느껴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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