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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희씨 이야기/책읽기

출산과 육아, 글로 배워지는 게 아니더라

수희씨 2016. 1. 24. 20:23

아가가 잠들었다. 수면조끼를 입히고 이불을 덮어주고 살금살금 방문을 빠져 나왔다. 아직 내가 할 일은 남았다. 젖병도 닦아야 하고, 딸랑이도 깨끗이 씻어야 하고, 빨래도 널어야 한다. 오늘도 이렇게 하루가 간다. 그래도 주말 저녁이라 조금은 수월하다. 남편이 옆에 있으니까. 겨우 여기까지 썼는데 아가 잠투정 소리가 어둠을 뚫고 터졌다. 얼른 달려가 공갈젖꼭지를 물렸다. 아가는 아직도 깊은 잠에 빠지지 않은 모양이다.

결혼하면 아기가 금방 생길 줄 알았다. 한 두 해가 지나도 별다른 소식이 없었다. 조금만 더 마음을 편하게 먹고 기다리면 되겠지, 생각했다. 그 시절 임신할 준비를 하겠다며 읽은 책이 바로 황금빛 똥을 누는 아기(최민희 지음)였다. 민언련 활동가였던 최민희씨가 나이 마흔에 아이를 낳고 기른 자연건강법을 나누기 위해 쓴 책이다. 아이를 낳기 위한 마음가짐에서부터 운동법, 먹거리, 임신상태에서 생기는 이상증세를 극복하는 방법, 산후조리, 아이 돌보기까지 모든 방법들을 제시한 책이다. 책에 나오는 대로 실천해서 나도 건강한 아기를 낳아야지 하는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쉽지 않았다. 풍욕을 하고, 현미밥을 먹고, 채식을 하고 등등 실천한 것보다 하지 못한 게 훨씬 많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결국 시험관 시술을 받았다.


우리 부부에게 아가가 찾아오기까지 십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이유 없는 난임이었다. 시험관 시술과 인공수정도 해봤지만 잘되지 않았다. 마흔을 넘어서면서부터 아이를 갖지 못한 채로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불안했다. 지난해 가을 다시 시험관 시술을 받았고, 임신에 성공했다. 임신이 되자 이번에는 무사히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떠나질 않았다. 태교신기도 읽고 그림책도 읽긴 했지만 별다른 태교는 하지 않았다. 두려움도 있었지만 편안한 마음가짐을 가지려고 애썼다

출산을 준비하면서 황홀한 출산이라는 책도 추천받아 읽었다. 자연주의 출산법을 소개한 책이다. 현재 병원에서 행해지는 출산 행태가 엄마와 아이에게 좋은 환경은 아니라는 문제제기를 하는 이 책은 출산은 고통이 아니라 말 그대로 황홀한 즐거움이란 걸 경험한 여성들 이야기다. 주위에 몇몇 분들도 내게 자연주의 출산을 권유했지만 나는 병원 출산을 선택했다. 자연주의 출산을 통한 황홀한 경험도 소중하지만 용기를 내지 못했다. 너무나 어렵게 얻은 아이를 지켜내는 게 우선이니까. 극적인 진통도 느껴보지 못하고 나는 결국 제왕절개 수술을 받았다. 시험관 시술 임신에 제왕절개 수술까지, 나는 자연주의 건강법과는 거리가 먼 임신과 출산을 했다. 모유는 꼭 먹이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지만, 결국 분유를 먹이고 있다. 임신에서 출산, 그리고 모유수유까지 내 뜻대로, 내가 꿈꿔왔던 대로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강하게 태어나서 별탈없이 자라고 매일매일 황금빛 똥을 누는 아가가 너무나 고맙다.

임신, 출산, 모유수유보다 더 험난하고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은 바로 육아다. 요즘말로 독박육아를 내가 하고 있다. 그 누구에 도움도 받지 않고 혼자서 아기를 돌보고 있다. 아가가 태어난 지 오늘로 207일이다. 지난 시간들을 어떻게 보냈는지 까마득하다. 끝나지 않는 전쟁을 계속 치르고 있는 느낌이다. 내게 산후우울증 따위는 없을 거라 장담했다. 얼마나 바라던 아이였던가. 실상은 달랐다. 정신적으로는 외로웠고, 육체적으로는 피곤했다. 아가를 안고 하염없이 울었던 몇몇 밤도 있었다. 지난 200여일 동안 내가 가장 많이 들여다 본 책은 바로 국민육아서라는 삐뽀삐뽀 119소아과(하정훈 지음). 엄청난 두께에 세세한 사항까지 너무나 자세하게 나와 있어서 참 여러모로 유용하다. 상황별로 그때그때 사전처럼 찾아보는 방식으로 읽는다

그러나 사실 책보다는 육아선배들에 생생한 경험이 더 귀에 쏙 들어온다. 내가 궁금해 하는 것들은 정작 책보다 선배 엄마들이 들려주는 경우가 많다. 아가들마다 저마다 다 다른 특징을 갖고 있기에 꼭 책에서 말하는 대로 되지 않는 게 육아다. 내게는 대표적인 게 바로 밤중수유와 수면교육이었다. 둘 다 4개월부터 시작하는 게 좋다고 했는데 밤중수유는 6개월이나 돼서야 그것도 한 달이나 고생을 해가며 겨우겨우 끊었고, 수면교육은 몇 번 시도해봤으나 잘되지 않아 여전히 아이를 안아서 재운다. 그래도 어느새 긴 잠을 자는 아가 덕분에 이렇게 앉아서 뭔가를 쓸 수 있는 시간도 생겨난다. 비록 벌써 두 번이나 징징거려 다시 공갈 젖꼭지를 물려주고 왔지만 말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가도 부쩍 자라고 나도 적응이 돼 이제는 조금 살만하다(?). 아니 너무나 행복하다. 내가 요즘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바로 사랑해. 하루 종일 사랑한다는 말을 달고 산다.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 내 뜻대로 되지 않아도, 책에 나오는 대로 할 수 없다 해도 자꾸 웃음만 난다. 눈 오는 겨울밤, 아가에 잠도, 이 밤도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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