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수희씨닷컴

모유와의 전쟁이 벌어지는 곳, 산후조리원 본문

수희씨 이야기/오마이베이비

모유와의 전쟁이 벌어지는 곳, 산후조리원

수희씨 2015. 7. 14. 15:55

똑같은 가운을 입고, 머리는 질끈 묶고, 화장기 없는 맨 얼굴에 총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흐릿한 눈으로 여자들이 복도를 걷는다. 그 여자들에 가슴팍에는 신생아가 안겨있다. 신생아실 문 앞에서 분유 좀 타주세요하며 간절히 외치곤 한다. 젖 달라 우는 아이를 달랠 여유가 없는 초보 엄마들이기 때문이다.

산후조리원에 들어온 지 이제 열흘이 됐다. 수술하고 입원한지 56일째 퇴원하고 바로 조리원으로 왔다. 산후조리원하면 산후에 몸을 추스르며 회복하는 데에 도움을 주는 곳인줄 알았는데, 첫날부터 내가 잘못 알았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머무는 산후조리원은 모자동실이다. 아이를 하루 종일 데리고 지내면서 아이에 리듬에 엄마가 맞추는 연습을 하는 곳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아이를 옆에 데리고 있어야 울면 젖먹이고, 아기가 자면 엄마도 자고 그렇게 하면서 아이와 엄마가 서로에게 적응하는 기간을 이 곳에서 어느 정도 도움을 받아가며 보낸다고 볼 수 있다.

산후조리원은 한마디로 아이에게 젖을 주기 위한 연습을 하는 곳 같다. 엄마들은 각자 방에서 매끼를 챙겨먹으며, 아이를 돌보며 젖을 준다. 젖이 잘나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잘 안 나오거나 젖몸살을 앓는 경우는 분유랑 혼합수유를 해야 하기에 매시간 마다 신생아실 앞에서 분유를 기다린다. 출산보다 더한 고통이 모유수유라는 것을 나는 미처 몰랐다.

                                                                                  <사진출처: 오마이뉴스>

수술 때문에 배도 당기고 컨디션도 좋지 않았다. 수유자세를 잡는 것도 익숙하지 않아 온몸에 힘이 들어가 목이며, 어깨, 허리가 다 아팠다. 그래도 어떻게든 젖을 물리려고 했는데 아이가 잘 못 빨았다. 유축기 사용도 쉬운 형편이 아니라 손으로 젖을 짰다. 서러웠다. 손가락, 손목이 아파왔지만 아이에게 모유를 먹이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에 꾹 참았다.

산후조리원 첫 날은 어리버리하게 지나갔다. 둘째날부터 일이 터졌다. 아이가 컨디션이 안 좋은지 자지러지게 울었다. 신생아실 간호사들은 내게 우리 아이가 똥이 묽다며 걱정이라고 병원에 가볼 것을 권했다. 괜히 눈물이 났다. 내가 뭘 잘못했나 싶기도 했고, 미안하기도 했다. 아이를 꼭 끌어안고 조리원 바로 앞에 있는 소아과엘 가서도 결국 눈물을 터트렸다. 의사는 내게 아이들에게 흔히 있는 증상이니 별거 아니라고 했지만 진정이 되질 않았다. 나도 나름 애썼는데, 아니 애쓰고 있는데 아이는 컨디션이 나빠 결국 설사용 특수 분유를 처방 받아 먹어야 하는 형편이 됐으니 말이다. 그렇게 2~3일이 지났다. 신생아실 간호사들은 우리 아가가 이제 많이 진정됐노라고 웃으며 얘기했다. 한시름 덜었다. 그러나 아기는 더 분유에 길들여져갔. 아가는 먹는 양이 점점 늘어나고 나는 모유수유에 대한 걱정이 늘어난다. 이대로 모유수유를 포기하고 분유를 먹어야 하나 싶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질거야 하며 마음을 다잡는다.

지난 열흘 내내 24시간 아이와 함께 있는 데는 실패했다. 새벽 3시를 넘기지 못하고 힘들어 아가를 신생아실에 맡기고 잠을 선택했다. 다른 산모들은 아이를 옆에 두고도 잠만 잘자는 것 같은데 나만 그러질 못하는 것 같아 아가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복잡한 마음이다. 하루 하루 같이 있는 시간을 좀 더 늘려보려고 노력한다. 새벽 2시를 넘긴 시각 아가를 달래기 위해 안고 조리원 방문을 나서서 복도를 걷는다. 평온한 줄 알았는데 여기저기 아가 울음소리가 간간이 들려온다. 굳게 닫힌 방마다 아가와의 전쟁이 시작됐음을 알리는 신호다. 이 울음 소리가 내게 위로가 될줄 몰랐다. 나만 고생하는 게 아니구나, 아가들이 우는 건 당연한 거야, 하면서 늘어지는 몸과 마음을 깨운다.

문득문득 나는 왜 산후조리원을 선택했을까를 생각한다. 남들이 다 하니까?  시댁이나 친정에 도움을 받기 어렵고, 남편도 출장이 잦아 혼자서는 도저히 무리겠다 싶어서 선택한 산후조리원이다. 먹을 것과 빨래, 청소를 챙겨주고, 간간이 신생아 목욕법 같은 교육 프로그램을 들으니 나쁠 게 없는 것 같은데도 지금에 산후조리원 시스템이 아주 딱 맞춤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연예인들만큼은 아니어도 2주간 꽤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 받는 서비스인데도 만족스럽지는 않다. 그렇다고 딱히 불만을 제기할 수도 없다. 내가 선택했고, 여기 시스템이 그러하니까.....

한가지 더,  어쩌면 나는 배부른 투정을 하고 있다는 생각도 했다. 많은 산모들이 다 산후조리원을 이용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분명히 경제적인 이유로 이마저도 선택하지 못하는 산모들도 많을 것이다. 얼마전 이재명 성남시장이 공공 산후조리원을 이야기했을때논란이 많았다. 그러고보니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죽을때까지 필요한 서비스를 대게가 민간 영역에서 비용을 지불하고 누린다. 공공산후조리원은 저출산 시대에 맞는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태어나면서부터 무덤까지 제대로 복지 서비스를 국가가 해주길 바라는 게 넌센스인가?!  

모처럼 찡얼대지 않고 잠든 아가덕분에 이렇게 썼다. 아가가 잘때 함께 자야 덜 피곤하다고 했는데.....

나는 이번주까지 이곳에 있을 예정이다일주일 정도를 더 보내면 아기와 더 익숙해지고 나름에 방법들을 터득해나갈 수 있을까.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