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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그랬다. 하몽을 먹겠다고 남원까지 다녀오자는 게 그럴듯하지 않았다. 뭘 얼마나 먹겠다고.... 그래도 약속을 했기에 길을 나섰다. 금방이라도 뭐가 쏟아질듯한 흐린 하늘 고속도로를 들어서자 마자 가는 비가 차창을 따라 흘렀다. 두시간여를 달려 남원이 가까워지자 온 세상이 하얗다. 입춘 지나 눈쌓인 풍경을 보니 애틋하기까지 했다. 지리산 생햄이라는 말 하나를 잡고 나선 길이다. 여주인은 우리에게 하몽과 한옥을 내주었다. 한옥 마루에 앉아 와인에 하몽을 먹자하니 이런 호사가 어딨나 싶을만큼 살짝 마음이 들썩거렸다. 내리는 눈 때문에 더 그랬는지 모를 일이다. 여주인은 남편(박화춘 박사)이 흑돼지를 연구하는 바람에 생햄을 만들게 되었고, 스페인으로 하몽 맛을 찾아 다녀온 여행 이야길 들려줬다. 버크셔라는..
어느 날 갑자기 가족을 떠나버린 아버지. 박범신 소설 은 그런 아버지를 찾아가는 아니 이해하는 과정을 담은 이야기다. 그날은 시우의 생일이었다. 엄마는 집으로 일식집 주방장을 불러 요리를 시켜 생일 파티를 준비한다. 그런데 시우의 아버지 선명우는 그날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아버지가 가출하자, 아버지를 그림자로 만든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 버렸다. 시우와 언니들은 부잣집(?) 딸로 원하는 것을 모두 다 누리며 살아왔는데 아버지가 떠나자 모든 걸 잃게 된다. 사실 시우와 언니들, 시우의 엄마가 누려왔던 풍요는 아버지 선명우 등에 꽂은 '빨대' 덕분이었다. 사막 모래 바람을 참아내며 하루 몇 시간 밖에 못자면서 돈을 벌었고, 번듯한 회사의 간부까지 됐지만 선명우는 여전히 가난했다. 아내의 허영심은 그를 계..
조주현, 옥천신문 편집국장을 지냈고 인터넷신문 소프트웨어 업체인 엔디소프트 지면편집전략국장을 맡아 일해오던 그가 지난 10일 하늘로 돌아갔다. 조주현 국장은 중증 장애인이다. 다리도 불편하고, 쓸개가 없어 속도 불편했다. 늘 당신이 살아있는 게 기적이라고 말하곤 했다. 조주현 국장님은 언제나 유쾌했다. 내게도 늘 재미나게 살라고 하셨다. 조주현 국장님과의 인연은 옥천신문 지면평가위원을 맡으면서 시작됐다. 한달에 한 번 옥천 가서 국장님을 만나고 밥도 얻어먹고 그랬다. 조주현 국장님은 늘 앞서가는 지역언론인이었다. 옥천신문 지면을, 인터넷 홈페이지 활성화 방안을 고민했다. 국장님의 이런 노력은 다른 지역언론인들에게도 퍼져나가 전국의 풀뿌리 신문들이 함께 모일 수 있는 장을 마련하는 계기를 만들기도 했다. ..
청년작가로 불리는 소설가 '박범신' 내가 박범신 소설을 처음 읽은 건 였다. 영화를 보고나서 소설이 궁금했다. 소설은 영화보다 훨씬 좋았다. 라디오에서 우연히 박범신 작가 인터뷰도 들었다. 히말라야를 걸었다는 이야길 들으면서 참 멋진 사람일거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다. 박범신 작가에 대한 관심에 트위터도 팔로우하면서 그가 하는 이야길 조금씩 들었다. 그렇게 호기심을 키웠다. 대전에서 토크쇼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갔다. 는 누군가에게 빌려줘 책이 없기에 최근작 을 사서 읽고 갔다. 그래도 작가를 만나러 가는데 책도 읽고 사인도 받아야겠다는 생각에서다. 강연이 시작되길 기다리며 앉아있는데 빨간 모자와 목도리를 두른 박범신 작가가 청중들에게 눈을 맞추고 일일이 악수를 하며 인사를 했다. 두손을 잡아 악수를..
2013년 올해도 이제 꼭 하루가 남았다. 올 한해 어떤 일들이 있었나. 나는 일기를 쓰지 않는다. 다이어리에 기록도 열심히 하지 않는다. 아침부터 컴퓨터를 켜고 페북을 들여다봤다. 내가 무슨 말을 했나, 무슨 일을 했나, 무엇에 감동했나 살펴봤다. (내게 페북은 그런 공간이다. 감동받은 순간들, 누군가에게 말 걸고 싶을 때에 나를 표현하는 공간이다.) 그다지 큰일은 없었다. 나는 올 한 해도 무사하게 잘 지냈다. 내 일 년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마흔, 두렵지 않아 나는 올해 마흔이 됐다. 마흔이 되면서 좀 성숙한 어른이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미숙했다. 거짓된 욕망에 번번이 속았으며, 후회할 줄 알면서도 탐욕스러웠다. 아닌 척 했지만 나는 잘 알고 있다. 괜찮지 않으면서 괜찮은 척 했다. 내 맘..
이달에는 제대로 책 한권을 읽지 못했다. 책을 손에 들어도 읽혀지지 않는다. 마음이 딴 데 가 있기 때문이다. 내 맘을 뺏아간 작업은 바로 내 일터 '충북민언련' 을 담은 책을 만드는 일이다. (내가 책을 만들었다니! 믿기지 않는다.) 작년부터 십 주년을 맞아 책을 만들겠노라고 큰 소리를 쳤더랬다. 다른 단체들이 흔히 내놓는 백서 형식이 아니라 이 책 한 권만 보면 충북지역 언론에 대해선 모든 걸 알 수 있는 그런 책을 만들겠노라 자신했다. 욕심이 아니라 그렇게 하고 싶었다. 십 년을 '제대로' 담고 싶었다. 이렇게 자신했던 이유는 바로 그동안 해 놓은 작업들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 단체 모든 활동을 글로 남겼다. 우리가 하는 행사부터 회원 만남에서 나온 이야기들까지 기사로 만들어 홈페이지를 통해 ..
마침 그날은 홍상수 영화 를 봤던 날이다. 혼자 대낮에 극장가서 영화를 봤다. 홍상수 영화는 꼭 보고 싶은데 같이 갈 사람도 마땅치 않고, 영화도 아무데서나 하지 않기에 가장 편한 방법은 혼자서 가는 것이다. 홍상수 영화는 내 식대로 쉽게 표현해 본다면 남자들이 얼마나 찌질한가에 대한 이야기다. 처음엔 짜증이 났더랬다. 뭐 이렇게 맨날 술을 먹나, 여자랑 한 번 자보고 싶어서 개수작들인가, 라는 생각만 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홍상수 영화는 참 재미났다. 그 찌질함을 확인하는 게 좋았고, 그들이 낮부터 술을 마시며 하는 쓸데없는(?) 이야기들에도 픽픽 웃움이 났다. 게다가 남녀 사이에 생각이 차이가 쾌 크다는 걸 홍상수처럼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얘기도 드물었다. 나는 (내가 남자도 아닌데?!) 홍상수 영화..
오늘 에 실린 기사를 보니 동양일보 조철호 회장 출판기념회가 대성황이었단다. 지역 주요기관장과 예술인 등 700여명이 참석했단다. 며칠 전 제보를 받았다. 동양일보가 일면에 조철호 회장의 시집 출판 기념회를 한다고 공고를 냈단다. 신문을 찾아보니 일면 상단 우측에 떡하니 알림장이 실렸다. 그리고 작은 글씨로 화분과 화환은 받지 않는다고 쓰여 있었다. 내 상식으로는 도무지 신문사주가 시집을 냈다고 출판기념회를 신문 일면에 알린다는 게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아, 글쎄 어떻게 신문 일면에 그런 알림을 낼 수 있는거죠? 라고 물었다. 내 말을 들은 사람들 대부분이 신문이 자기 꺼라고 생각하니까 그렇지 라고 답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이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그 출판..
지방정치 20년이라지만 여전히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시의회 의원이 누구인지, 그들이 어떤 정책을 결정하는지 잘 모른다. 게다가 제대로 견제와 감시도 이뤄지지 않는 모양새다. 잇따라 비위가 터지는 걸 보면 말이다. 또 다시 선거는 다가오고 있다. 내년 선거에서는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 벌써부터 선거에 누가 나설 준비를 한다는 소리는 간혹 들려오지만 지역주민들을 위해, 지역을 위해 어떤 변화를 준비하고 있는지는 도통 알 길이 없다. 지난 4월에 우리 지역에 처음으로 지방자치리더양성아카데미가 만들어졌다. 지방정치에 관심 있는 분들을 모아 관련 강좌를 듣는 프로그램이다. 지난 9월5일 다시 두 번째 지방자치리더양성아카데미가 열렸다. 이번에는 1기 때보다 더 빵빵한 강사들이 나선다. 9월5일 첫 강연은 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