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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와 한 여자, 죽음 그 이후에 남겨진 것들 본문

수희씨 이야기/책읽기

그 남자와 한 여자, 죽음 그 이후에 남겨진 것들

수희씨 2012. 8. 12. 14:43

이전에는 잘 알지 못했다가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필립로스와 아니 에르노의 소설을 우연히 알게 돼 읽었다. 그런데 마침 내가 읽은 두 이야기가 어떤 남자와 여자의 죽음, 그리고 삶에 대한 이야기였다. 소설을 읽고 나서 강렬한 끌림이 일었다. 그리고 조금은 쓸쓸해졌다. 지금 나의 행복도 언젠가는 아무일도 아니었던 것처럼 그렇게 한 문장으로 설명되는 건 아닐까 싶기도 했다. 

필립로스의 <에브리맨>. 에브리맨의 주인공은 이미 죽었다. 자신의 묘지 앞에 누가 모였는지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보석가게 아버지의 아들로 태어났고, 친절한 형을 두었고, 결혼을 세번이나 했지만 전처와 아이들 가운데에는 유일하게 자신을 사랑해준다고 느끼는 딸은 낸시 뿐이라고 생각하고, 광고일로 잘 나가기도 했지만, 나이 들어 병들어 죽어버린 그였다. 지극히 평범한 한 남자의 이야기다. 


<에브리맨>은 그가 자신의 한때를 회고하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장례식에서부터 거슬러 올라가 거침없이 사랑을 나누었던 이야기도 나오고, 심장 문제 때문에 심혈관 시술을 받았던 순간, 광고일을 그만두고 화가가 되려고 그림을 그렸던 그 순간 순간들을 묘사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허무함을 느꼈던 것 같다. 가장 행복했던 순간에도 자신의 삶에 대한 불신이 생겨나가, 소멸의 가장 자리에 있다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서는 더이상 사람들에게 보여줄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한때는 완전한 인간이었는데, 그 어디에서도 이질감을 느낄 수 없었는데....이제는 모든 것이 정지되버린 것 같은 이질감에 사로잡히고 말았다고 고백하기도 한다. 

인생이란 그런 것일까. 늙고 병들어...더이상 위로도 위로로 여겨지지 않는 그런 순간도 있는 것일까?!

<에브리맨>은 주인공이기도 하고, 화자이기도 한 그가 담담하게 자신의 인생을 풀어나갔다면, 아니 에르노의 <한 여자>는 작가가 어머니가 죽고 나서 쓴 글이다. 그녀는 어머니를 매장한지 3주가 지나서야 두려움을 극복하고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를 쓸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어머니에 관한 글을 계속 써나가겠다고 다짐한다

그녀가 기억하는 어머니. 시골 여자아이에서 어린 나이에 공장에 들어갔고, 평범하게만 보이지 않았던 한 남자를 만나 어엿한 가게 주인의 꿈을 꾸었던 어머니. 자신이 가지지 못했던 것을 딸에게 투영하고 싶었던 어머니. 그래서 악착같이 딸이 공부하기만을 바랬던 그런 어머니였다. 그랬던 어머니가 알츠하이머병으로 죽음을 맞이했다. 그녀는 자신이 어머니와 닮았다고 느끼는 만큼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늘 어머니를 떠나고 싶어했다고 밝혔다.  

그런 그녀가 어머니에 관한 글을 쓰면서 어머니의 삶을 이해한다. 어머니가 살아 있는 시간과 장소에서 어머니와 함께 살아간다는 느낌이다. 어머니에 대한 글을 쓰면서 "나이들어 노망난 여자와 젊어서 힘차고 빛이 났던 여자를 글쓰기를 통해 합쳐놓지 않고서는 내가 살아갈 수 없으리는 것을 알고 있다." 고 했다. 

그녀는 다음 문장으로 끝을 맺는다. " 여자가 된 지금의 나와 아이였던 과거의 나를 이어 줬던 것은 바로 어머니그녀의 말그녀의 손그녀의 몸짓그녀만의 웃는 방식걷는 방식이다나는 내가 태어난 세계와의 마지막 연결 고리를 잃어버렸다."  

그녀는 어머니가 받기보다 아무에게나 주기를 좋아했다며, 글쓰기도 남에게 주는 하나의 방식이라며 자신의 어머니를 닮고 싶어하는 마음을 드러냈다.

<한 여자>를 읽으면서 나는 내내 나의 어머니를 생각했다. 이전에는 잘 알지 못하는 감정들도 나이가 들면서 삶에 대한 경험이 많아지면서 이해하게 되는 것들이 있다. 어머니의 삶도 그러하다. 어려서는 잘 알지 못했던 엄마의 삶을 이해하게 되고, 이해하고 싶어지는 그런 마음. 

<에브리맨>, <한 여자> 우연히 알게 된 이 두 소설을 읽으며 생각한다. 산다는 건 무엇일까를... 허무함에 빠지고 싶지는 않다. 그남자와 그여자의 삶이 허무했다고 말하는 것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 좀 외로웠을지도 모르겠다. 그게 인생이라는 걸.....죽음을 앞둔 그들은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좀 더 살아봐야만 알게 되는 것들이 또 있겠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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