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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동형’과 ‘익명’에 숨은 기자들을 구하라 본문

수희씨 이야기/책읽기

‘피동형’과 ‘익명’에 숨은 기자들을 구하라

수희씨 2013. 6. 27. 21:39

수희씨와 책읽기 - 피동형 기자들/ 김지영 지음 / 효형출판

 고객님 가격은 00 나오셨구요, 이 상품은 신상으로 파란색이시구요.물건 살 때마다 물건이나 돈을 높이는 이상한 말을 참 많이 듣는다. 그때마다 어 잘못 쓰는 표현인데하고 생각하지만, 따로 얘기하진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쓰고 있기 때문에 일일이 말하기도 그렇고 유난스럽다 할까봐 꾹 참는다. 어디 이뿐인가. 전화를 끊을 때 들어가세요라고 말하는 것도 잘못 쓰는 표현이라 배웠는데도 어느새 내가 그러고 있다. “네 어머니 들어가세요라고. 또 많이 쓰는 말 가운데 좋은 하루 되세요라는 말도 잘못 쓰는 표현이라는 걸 알기에 꼭 좋은 하루 보내세요라고 쓰지만, 상대로부터 늘 듣는 말은 좋은 하루 되세요. 우리말을 잘못 쓰는 경우는 참 많다. 나도 마찬가지다. 몰라서 제대로 못 쓰기도 하고, 원래부터 습관을 잘못 들인 탓도 크다. 헷갈리는 (헛갈리는과 헷갈리는도 다르다!) 표현들은 꼭 사전을 찾아보거나 하는데 결코 쉽지 않다. 그래도 습관이란 게 참 무섭다. 우린 왜 이렇게 우리말을 제대로 모르는 걸까.

 우리가 일상에서 우리말을 제대로 못쓰고 있듯이 언론도 그렇다. 대중매체에서 우리말을 잘 못 쓰니 우리가 이렇게 헤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여러 가지 문제가 있을테지만 그 가운데 가장 심각한 것은 바로 피동형표현이다.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심의위원 김지영씨가 쓴 책 <피동형 기자들>은 바로 이런 문제를 고발한다.

 

기대된다, 해석된다, 풀이된다, 생각된다, 이해된다, 지적이다, ~인 것으로 알려졌다, 평가되었다, 예견된다, 보여진다, 평가다, 진단이다, 전망이다 어떤가? 기사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서술어들이다. 기사에는 유독 하다되다”, “로 되어지다는 식으로 피동형을 많이 쓴다. 우리말은 능동형이다. 능동형은 서술어의 주어가 명확하다. 누가 그렇게 한 것인지가 분명히 드러난다. 그런데 왜 능동형이 아닌 피동형을 많이 쓰는 걸까

저자는 기사에 피동형 표현이 늘어난 이유로 80년대 공포 억압정치가 신문 내용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한다. 당시엔 보도지침도 있었다. 저자는 기사 문장은 기자의 자기 정체성 표현인데 조종과 통제의 터널을 지나오는 동안 생계형 또는 굴종형 권력 추구형으로 변했다고 지적했다. 피동형을 쓰면 행동 주체가 숨는다. 이 때문에 기자 자신의 의견을 숨길 수 있어 피동형 표현이 늘어났다고 한다.

 당시엔 시대 분위기상 그랬다지만 여전히 피동형을 많이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보도의 객관성 때문이란다. 피동형을 쓰면 글을 쓴 행동 주체인 기자가 드러나지 않는다. 흔히 말하는 스트레이트 기사는 보통 기자 의견을 밝힐 수는 없다. 그러다보니 피동형 표현을 쓰면 책임성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 객관성을 확보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얘기다. 저자는 객관보도는 내용면에서 사실에 대한 정확성 공정성 객관성을 갖추어야 하지만 구성상 사실과 의견을 분리해야 한다며 사실을 기자의 의견으로 오염시키지 말고 의견을 사실처럼 둔갑시키지 말라고 밝혔다

특히 기자들이 추측성 보도나 경향성 짙은 보도를 할 때 사실을 의견으로 오염시키기 쉽다며 의견으로 오염된 기사는 객관성이 사라진다고 했다. 기사의 객관성에 대한 논란은 분분하다. 우리나라 언론이 객관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미국 언론에서 배워 온 거라는 얘기도 들은 적 있다. 객관성 보다는 저널리즘의 원칙인 진실을 추구하면 공정성과 객관성은 저절로 확보될 수 있는 문제인데, 늘 객관성에만 목을 맨 건 아닌지 모르겠다. 정말 습관적으로 쓰는 피동형 때문에 오히려 기사의 객관보도를 망친다는 지적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기자가 객관보도를 하지 못할 때 그 보도 문장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고 밝혔다. 바로 무주체 피동형 표현이다. 대표적인 게 ‘~인 것으로 판단된다, ~로 이해된다등이다. ‘~이라고 알려졌다’, ‘ ~ 할지 주목된다따위로 서술하는 간접인용문과 가정 판단 서술 역시 취재가 정확하지 않아 추측성이나 기자의 선입견 특정 가치를 띤 경향성이 나타나 기사의 사실성과 신뢰도를 떨어트린 경우다

언론이 무주체 피동형 표현과 함께 익명을 남발하면서 신뢰도는 더 떨어진다. 기사를 보면 대부분 취재원을 명확하게 밝히지 않고 00 관계자라고 쓰는 경우가 많다. “지역 정치권 한 인사는~ , 시 관계자는~ ” 이런 식으로 취재원을 밝힌다. 익명보도를 원칙으로 삼아야 할 상황도 있지만 대부분은 명확하게 밝혀주는 게 기사 신뢰도를 높여주는 데 익명이 당연한 것처럼 쓰고 있는 경우가 많다. 피동형 문장을 쓰지 않는 기사도 많다. 그러나 저자가 지적한 대로 참으로 우리 언론이 피동형과 익명을 무책임하게 많이 쓰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저자는 이렇게 주체를 밝히지 않는 피동형 표현을 대중 매체가 많이 쓰면서 일반 대중들도 피동형 사용을 많이 하게 됐다고 주장한다. 언론은 매일의 국어 교과서라서 제대로 우리말을 써 기사를 써야 한다고 강조한다. 말은 생각을 담아낸다. 내 말의 주인은 이지 다른 이가 아니질 않나. 주어를 똑바로 살려서 능동형 표현을 많이 쓰면 우리 사회도, 우리 삶도 더 당당해지지 않을까?! 

<피동형 기자들>은 무심코 쓰는 말과 문장들이 얼마나 엉망인지를 일깨웠다. 이 책을 읽고 기사를 보니 온통 이건 아니다싶은 문장들이다. 쉽게 바꿀 수 있을까 걱정이다. 언론이 피동형 표현과 익명 사용을 자제하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고, 정부도 공공 언어관리에 관심이 없어 안타깝다며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에 백번 공감하며 책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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