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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상상하지 못한 ‘거절’ 방법 99가지, 그리고 멀어져간 꿈! 본문

수희씨 이야기/책읽기

당신이 상상하지 못한 ‘거절’ 방법 99가지, 그리고 멀어져간 꿈!

수희씨 2013. 4. 17. 22:44

  이 책 <소설 거절술>은 너무나 재미나다. 읽다가 깔깔깔 웃다가 뒤로 넘어갈 정도다. 그런데 실상은 아픈 이야기다. 누군가에게 거절당해본 사람들은 안다. 거절당한 그 순간이 얼마나 쓰라린 지를. 특히 글은 더하다. 내 모든 걸 쏟아부었는데 외면받는다면 정말 미칠 것이다. 이 책은 편집자가 소설 원고를 거절하는 99가지 방법을 담고 있다. 가장 기본적인 거절 방법은 아마도 원고는 잘 받았고, 검토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원고를 출간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행운이 있길 빈다정도 아닐까 했는데, 99가지라니 놀랍다.

  <소설거절술>을 쓴 카밀리앵 루아는 고백한다. 첫 소설을 내기 위해 야심차게 출판사에 원고를 보내지만 세 달이 흘러도 묵묵부답이다. 모욕감은 극에 달하지만 어느새 자존감을 되찾고 다른 출판사, 그러니까 비교적 만만한 출판사에 보내보지만 돌아오는 건 거절편지다. 그렇게 서랍속에 던져놓은 거절편지들이 쌓여간다. 거절편지들을 돌아보니 매정한 거절 편지, 탁월한 재치를 발휘하는 그럴싸한 거절까지 당신이 상상할 수 있는 (아니 상상도 하지 못했던) 모든 종류의 거절이 담겨 있더라는 것이다. 그렇게 모은 거절 편지 99개가 분류돼 실려 있다. 소설을 보내놓고 기다리는 소설가는 거절편지를 받고 모욕감을 느꼈을지 모르겠지만, 거절 편지 자체를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몇 가지 예를 들자면 이렇다.

콧대 높은 - 귀하께서 우리 출판사 문을 두드리신 것은 명백히 잘못입니다. 우리가 귀하의 이름을 기억한다면, 그것은 앞으로 절대 귀하와 함께 일하지 않기 위해서라는 점을 유념하십시오

  자동 응답시스템 - 귀하께서는 8번을 누르셨습니다. 죄송합니다! 편집위원회 결정은 부정적입니다! 잘못 누르셨습니다. 이제 전화를 끊으시고 더 이상 전화하지 마십시오. ”

  노동조합원 - 이 분쟁만 타결된다면 귀하의 원고에 대한 검토를 신속히 진행할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으로서는 상황이 매우 좋지 않습니다

  혀짤배기 - 떤댕님 원고 잘 바다떠요. 하지만 유감드럽게도 그걸 출간하지 않기로 해뜹니다

  대략난감 -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원고가 불운하게도 시립 쓰레기장에서 발견되었습니다

  페미니스트 - 여성에 대해 이토록 무례한 소설을 좋아할 여성 독자가 과연 하나라도 있을까 싶네요

  표절 - 선생님의 원고를 언젠가 읽어본 느낌이 듭니다. 혹시 우리가 서로 아는 사이인가요?”

  싸늘한 예의 - 펜을 놓으세요. 선생이 쓴 글들을 태워버리고 문학을 멀리하십시오 이런 원고를 편집자들에게 보내는 것도 그만두세요

(제목마다 편지 내용이 담겨 있는데 그중 일부만 발췌했다)

 

  다 옮길 수 없어 유감이다. 기회가 된다면 꼭 한번 전문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작가는 엄청 공들여 쓴 소설인데 편집자들은 저마다 기준으로 원고를 평가하고, 거절하는 방법도 제각각이다. 이 세상 모든 유명한 작가들이 다 저런 과정을 거쳤을 거라 생각하니 은근히 통쾌하다. 작가를 꿈꾸는 이들이 이 책을 보고 미리 거절당하는 법을 익히는 것도 덜 상처받는 방법이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소설은 아무나 쓸 수 없는 것이니 수많은 거절을 당하면서도 글을 쓰는 모든 작가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여기 또 한 명의 작가와 편집자, 그리고 출판사 사장이 있다. 2012년 이상문학상 대상을 받은 소설가 김영하의 <옥수수와 나> 이야기다. <옥수수와 나> 소설 속 는 한때 잘나가는 소설가였지만 최근엔 출판사 돈을 떼어먹을 위기에 처했다. 딸 유학비를 위해서라도 소설을 쓰긴 해야 하는데 도통 써지지 않아 고민이다. 그러던 어느 날 전처인 편집자가 찾아와 이번엔 꼭 소설을 써야 한다고 다그친다. 얼결에 일제시대 유령 곡마단 얘기를 구상중이고, 최후 생존자가 뉴욕에 있어 취재를 가야 하는데라고 말했는데, 결국 뉴욕까지 가게 된다. 소설가는 전처와 사장이 특별한 관계일거라 의심도 하지만 막상 사장을 만나보니 자신의 빅팬을 자처하고 나서길래 호감을 갖는다. 출판사 사장 아파트라는 곳엘 가니 근사하기는커녕 쥐라도 나올 듯한 분위기다. 그런데 소설가는 거기서 사장과 별거중인 압도적인 미모를 가진 사장 부인 영선을 만난다.

  어쩌다 영선과 섹스를 하고 난 후 통 소설을 쓰지 못했던 소설가는 거부할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책상 앞에 앉아 여태 단 한 줄도 쓰지 못한 소설을 마치 비처럼 쏟아낸다. “늘 마감에 쫓기며 마지못해 글을 썼고, 원고를 보내면서도 마음속 깊은 곳에는 깊은 불안이 있었던소설가는 마치 이제야 비로소 작가가 됐다는 강한 확신이 들 만큼강렬한 끌림을 느낀다고 말한다. 엄청난 대작이 나올 것만 같은 분위기였는데 어느 날 사장이 나타나 권총을 내민다. 빅팬 어쩌구 하던 사장은 자기 부인과 잤냐며 소설가에게 약을 먹고 죽을지, 권총에 맞아 죽을지 결정하라 한다. 그러면서 소설은 끝이 난다.

  소설 <옥수수와 나> 속 소설가와 편집자는 좀 극단적이다. <소설거절술>을 읽고 나서 <옥수수와 나>를 읽으니 이 세상엔 참으로 다양한 소설가와 편집자 혹은 출판사 사장 간 관계가 있을 것이란 생각에 재미났다. 내 예전 꿈도 출판 기획자였다. 소설가가 될 생각은 못했지만작가를 꿈꾸기도 했다. 만일 내가 소설가나 혹은 편집자가 되었다면 어땠을까? 수많은 사람들이 꿈을 키워내고, 또 그 꿈이 거절당하거나 이루어지고, 그걸 웃으며 지켜보고. 이래서 인생은 알 수 없는 건가. 거절편지를 쓰거나 받을 처지가 아닌 걸 다행이라고 해야하나?! 살짝 웃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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