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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희씨 이야기/책읽기

간송의 꿈, 우린 잘 지켜나가고 있나

수희씨 2013. 7. 26. 09:34

나는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했다. 고고미술사학과는 고고학과 미술사를 배우는 곳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과 이름을 들으면 되묻는다. 그게 뭐하는 학문이예요? 라고. 나는 그리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은 아니었다. 학과 공부가 재미없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재밌지도 않았다. 어려웠다. 미술사는 주로 한국미술사와 동양미술사, 중국미술사를 배우고, 한국미술사에서도 회화사와 도자사, 조각사 등 세분화 된 갈래를 배운다. 수업시간에 봐야 하는 그림 슬라이드가 정말 많았다. 그 당시 수업에서는 작품에 대한 의미나 해석보다는 시기별로 어떤 특징을 보였는지, 어떤 사조의 작품인지 등 지나칠 정도로 형식미에 치중했기에 우리 미술의 아름다움이나 고유함에 대한 철학적 기반에 대해 제대로 들여다보질 못했다. 물론 수업에 흥미를 갖고 더 찾아들어가서 배우고 익히면 가능했을 텐데 그러질 못했다. 학부 때는 매 학기마다 답사도 많이 다녔다. 전국 곳곳에 남겨진 선사 유적지와 건축미와 불교 조각 작품을 볼 수 있는 사찰 등을 다니며 보는 눈을 살짝 떴다.

 내가 대학에서 힘들게(?) 미술사 수업을 들으며 지겨워하고 있을 그 당시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19931권 출간)가 출간돼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는 말이 회자됐고, 사람들은 주말이면 유홍준 교수가 소개하는 곳으로 답사를 떠났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정작 유홍준 교수 책을 반기진 않았다. (내 기억은 그렇다) 학문적인 것과 대중을 상대로 하는 것은 달라야 한다는 자존심 때문이었을까. 뒤늦게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읽으면서 나도 여기 다 가본 곳인데 왜 나는 이런 걸 못 느꼈지?” 하기도 했으며, 미술사가 꽤나 재밌고, 매력적인 학문이란 걸 새삼 느꼈다.

 

비슷한 시기에 최순우의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서서(1994년 출간)라는 책도 나왔다. 이 책 역시 우리 문화를 보는 안목과 아름다움을 잘 표현해냈기에 대중의 지지를 받았다. 유홍준과 최순우의 책은 대중을 사로잡으면서도 우리 문화유산의 가치를 알려냈으니 참으로 큰 일을 한 셈이다. 유홍준과 최순우라는 미술사학자들도 사실 간송 전형필이 없었다면 나올 수 없는 학자들이 아닐까 싶다. 우리 문화유산을 말 그대로 지켜온 이가 바로 간송 전형필이다.

 지난 2010년 작가 이충렬은 간송 전형필의 일대기를 책 간송 전형필에 담아냈다. 간송 전형필은 간송이 어떻게 우리 문화재를 수집했는지 그 과정을 작가의 상상력을 보태 드라마틱하게 재구성해 읽는 재미도 있을뿐더러 간송이 우리 문화유산을 어떻게 다루었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간송은 정말 뛰어난 안목으로 우리 문화재를 수집했다. 간송이 수집한 작품들은 곧 우리나라 문화유산을 대표하는 거의 모든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그림, 글씨, 도자기, 조각까지 간송이 소홀히 한 것이 없을 정도다. 간송이 아니었다면 겸재의 몽유도원도나 단원 김홍도와 혜원 신윤복의 그림을, 훈민정음 혜례본을, 고려청자와 조선백자의 아룸다움을 우리가 알 수 있었을까.

부유한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 미술에 관심을 가졌던 간송은 시대를 지켜내는 선비의 삶을 살라는 스승 고희동의 가르침과 스승 오세창의 가르침 즉 동서고금에 문화수준이 높은 나라가 낮은 나라에 영원히 합병된 역사는 없고 그것이 바로 문화의 힘이네. 우리 민족의 눈앞에서 사라지면 남은 문화가 초라해질테니 지킬 수 있는 만큼 지켜야 하네 라는 말에 운명처럼 우리 문화를 지켜내는 일에 전 재산과 열정을 쏟아 부었다. 간송은 우리나라 최초로 개인박물관까지 만든 미술수집가였다.

 돈을 불리기 위해 미술품을 사들이는 재벌가의 사모님들이나 권력자들의 숨은 거래를 보노라면 돈만 있다고 할 수 있는 일은 분명 아니리라. 무엇보다 간송에게는 한국의 미를 발견해내는 안목이 있었고, 지켜내려는 의지가 있었다. 간송 전형필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할까. 오늘의 문화유산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은 잘 지켜지고 커나가고 있는 것일까.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통해 전 국민의 여행 문화가 바뀌었듯이 간송 전형필을 통해 우리 문화재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왜 조선의 역사와 문화의 흔적들을 미친 듯이 모았는지 너희들의 세상에서라도 알려다오라는 간송의 바람대로 우리들의 세상에서 우리들의 눈으로 가치를 발견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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