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수희씨닷컴

2011년 7월9일 나는 희망버스를 탔다 본문

수희씨 이야기/세상에 말걸기

2011년 7월9일 나는 희망버스를 탔다

수희씨 2011. 7. 10. 14:10
나는 희망버스를 탔다. 이번에는 꼭 타야겠다고 생각했다. 거창한 희망을 품었다기 보다는 그저 고공크레인위에서 185여일을 버티고 있는 김진숙 지도위원을 먼 발치서나마 보고 싶었다.

               < 2011년 7월9일 경향신문 1면 기사>
 
충북에서 출발한 희망버스에는 많은 분들이 함께 했다. 중학생을 데리고 오신 어머니, 노동조합 활동을 하는 노동자, 민간인, 혹은 일반인 이라고 소개하신 평범한 시민들, 선생님들이 함께 했다. 민주노총 충북본부 김용직 사무처장의 말처럼, 조직된 노동자, 조직될 노동자, 미래의 노동자들이 버스에 올랐다.

                       < 충북에서도 3대의 희망버스와 희망 봉고가 출발했다>

부산으로 달려가는 희망버스! 달려가는 내내 비가 억수같이 퍼부었다. 밀양쯤을 지날때였나. 내린 비로 물에잠긴 비닐하우스들이 차창밖으로 보였다. 4대강 공사가 이루어진 낙동강이 물에 넘쳐나는 모습이었다. 눈으로 4대강 공사의 허망함을 직접 확인했다. 비를 뚫고 역으로 향했다. 이미 많은 분들이 역 광장에 있었다. 전국 각지에서 195대의 희망버스가 출발했다고 한다. 부산으로 오면서도 트위터를 통해 많은 분들이 부산으로 달려오고 있다는 걸 확인했다. 모두가 한마음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1만여명이 모였다고 한다. 전국에서 만명의 사람들이 김진숙을, 희망을 찾아 온 것이다. 민주노총이나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사람들도 있었지만 수많은 시민들이 모인 것이다. 

                                                   <부산역에 비친 사람들 모습>

부산역에서 문화제가 시작되고, 빗속에서도 흥겹게 놀았다. 덩실덩실 춤을 추며 놀았다. 문화제가 시작되고 천리길을 걸어서 도착한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을 대표해 이창근 조직부장이 단상에 올랐다. 사회자가 오는 동안 무엇이 가장 맛있었느냐고 묻자, 그는 삼계탕, 쭈쭈바도 맛있었지만 무엇보다 눈물이 가장 맛있었다고 말했다. 희망버스를 조직한 송경동 시인과 김선우 시인, 심보선 시인이 무대에 올랐다. 심보선 시인은 오늘의 이현실을 늘 꿈을 꾸었는데, 꿈이 아니라 정말 현실이 되어 벅차다며, 여러분 모두가 시라고 말했다.  이어 세시인은  <크레인에서 태어난 인간>이라는 시를 낭송했다. 

                           <소금꽃 찾아 천리길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가 무대에 올랐다>



         

문화제가 끝나고 드디어 김진숙 지도위원을 만나기 위해 한진중공업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경찰차가 역을 뺑둘러 서 있다. 못가게 막는가 싶었지만 행진은 계속되었다. 부산역을 나와 한시간쯤 걸었을까. 영도다리를 건너서 한진중공업을 800미터 앞두고 경찰이 방어벽을 치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경찰은 불법집회라며 물대포를 쏘겠다면서 방송을 했다. 맨 앞 대열의 사람들은 경찰이 쏜 최루액을 맞고 괴로워하고 있다는 방송이 나왔다. 뒤에서부터 물이 전달됐다. 먹다 남은 생수병을 앞으로 앞으로 전달했다. 그래도 경찰은 최루액을 계속 쏘았나보다. 정동영 의원도 맞았고, 이정희 의원은 최루액을 맞고 실신해 병원으로 실려갔다고 들었다. 이후에도 경찰이 던진 돌에 기자가 맞아서 피를 흘렸다는 방송도 나왔다. 

오마이뉴스 TV가 현장을 생중계 했다. 백기완 선생님이 방송차에 올라서 말했다. 김진숙을 학살하기 위한 작전이 아니냐며 분개했다. 백기완 선생님은 언론인에게도 당부한다며 말씀하셨다. 언론은 밝은 곳과 어두운 곳을 가리지 말고 분명히 얘기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어제 집회 현장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트위터에 상황을 올리고, 정보를 주고 받았다. 트윗 내용을 보니 MBC만 1꼭지 보도했을뿐 그 어느 방송사도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단다. CNN등 해외 채널들이 유례없는 시민들의 연대 움직임에 대해 보도를 했는데, 정작 우리나라 언론은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다. 현장에 기자로 보이는 사람들은 여럿 있었다. 그래도 보도는 나오질 않았다.


  < 백기완 선생님이 차 위에 올라 김진숙 학살작전을 막으러 왔다고 말했다>

앞으로 열발만 더가자, 더가자, 우리는 저 벽을 넘을 수 있다. 방송이 흘러 나온다. 많은 사람들이 한걸음씩 내디뎠다. 앞쪽에서는 대치 상황이 이어졌고, 뒤쪽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대열을 만들었다. 방송차에서 '행복의 나라로' 라는 노래가 나온다. 함께 따라 불렀다. "장막을 걷어라, 나는 행복의 나라로 갈테야" 시간은 조금씩 흐르고 경찰폭력 철폐하라, 정리해고 철회하라 목이 터져라 외친다. 현장에 있던 아는 기자에게 전화가 왔다. 상황이 위험하니 뒤로 물러나 있으란다. 사실 겁도 났다. 정말 저들이 물대포를 쏠까? 이렇게 아이들까지 있는 대오를 향해 물대포를 쏘려나 싶었는데 저들은 .....

새벽에 대열을 빠져 나와 먼저 청주로 올라왔다. 끝까지 있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먼저 왔다. 올라오면서 트위터를 보니 경찰은 최루액을 쏘고, 물대포를 쏘고, 돌을 던지고, 시민들을 마구 때렸다한다. 아무런 무기도 들지 않은, 그저 희망을 확인하겠다고 온 사람들을 경찰은 무차별적으로 폭행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연행됐다.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의 아내와 딸도 연행됐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경찰이 국민이 아니라 한진중공업을 지키기 위해 있는 경찰이라고 사람들은 말했다. 2차 희망버스를 타고 확인한 것은 경찰과 언론이 더이상 국민을 위해 일하는 집단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1만여명의 시민들이 비를 맞으면서도 그곳으로 향한 이유는 우리 모두 같은 사람이니까, 서로 외롭지 않게, 있는 힘을 나누어 서로 행복해질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아니었을까. 끝내 그녀를 보지 못하고 돌아서야 했지만, 가슴 속에 희망의 등불을 밝힐 수 있었다. 용기를 내야 할 일이라면 용기를 내고, 내 힘을 보탤 수 있는 일이라면 내 힘을 보태고, 함께 기뻐하고, 슬퍼할 수 있는 가슴을 지닌 사람이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 희망의 마음을 언론이 보도하지 않는다해도, 경찰이 무력으로 진압한다해도 꺽지는 못할 것이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