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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스런 국가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본문

수희씨 이야기/책읽기

야만스런 국가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수희씨 2014. 10. 20. 19:01

지난 추석연휴에 나키자와 신이치의 <곰에서 왕으로>라는 꽤 흥미로운 책을 읽었다. (숨 일꾼이 건넨 책이다.) 나카자와 신이치는 신화 강의록 시리즈 ‘카이에 소바주’를 펴냈는데 <곰에서 왕으로>는 그 시리즈에 두 번째 책이다. 강의를 묶어낸 책이라서 그럴까. 딱딱하지 않아 어렵지 않게 읽었다. 그보다 워낙에 생각지도 못했던 이야기라 더 놀라웠다. 갑자기 곰이라니 말이다.

이 책에서는 곰에 대한 환태평양지역의 신화를 소개하며 이런 신화를 통해 인간과 동물이 어떤 관계를 만들었는지, 지금 현재는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이야기한다. 사실 곰은 우리에게 친숙한 동물 아닌가. 아가들이 많이 부르는 노래 ‘곰 세마리’도 그렇고, 끌어안고 자는 곰 인형도 곰돌이 푸우도 그렇다. 이런 ‘곰’들을 그저 귀여움에 대상으로만 여겼는데 ‘태초에 신은 곰이었다’는 이야기에 그렇다면 곰이 이렇게 인간과 친숙한 이미지로 다가오게 한 이런 장치들도 모두 이런 신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건가 하는 의문도 생겨났다. 


나카자와 신이치 교수는 신화 속에 나타난 동물과 인간의 관계를 살피면서 그 시대와 현재를 비교한다. 신화의 세계를 더 들여다보자. 신화에는 인간이 곰이 되기도 하고, 곰이 인간이 되는 과정이 나타나기도 한다. (우리 단군신화도 곰이 웅녀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단순히 신화 속에서만이 아니라 인류학, 고고학적 증거로도 곰에 대한 신화는 나타난다. 스위스 알프스 지역에 드라헨로호라는 동굴에서는 네안데르탈인이 사용했던 석기와 곰의 두개골과 대퇴골이 발견되었단다. 이 동굴에서는 돌을 짜 맞춰서 상자모양으로 만들고 그 안에 곰의 두개골이나 발뼈 같은 것을 가지런히 수납되어 있어 이 동굴 속에서 종교적인 의례가 행해졌다는 추측을 하는 모양이다. 네안데르탈인 마음에 탄생한 신의 모습은 곰의 모습이 아니었냐는 추측이다. 사실 대학때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은 학생이긴 했지만 )나도 고고학을 배웠다. 남겨진 유물이나 유적을 통해 과거를 상상해보는 작업은 꽤나 흥미진진하다. 게다가 수많은 시간이 지나도 그 흔적들이 그렇게 남아 있다는 게 놀랍고 그 흔적들 속에서 어떤 질서나 문화, 종교 의식을 행했다는 걸 엿볼 수 있다는 건 황홀하기까지 하다.

다시 신화로 돌아가자. 오늘날 사람들은 신화를 잊었거나 우습게 여기기 시작한다. 게다가 동물에 대한 인간에 지배를 당연히 여기거나 그것을 문명이라고 말하기 까지 한다. 나카자와 교수는 신화는 현재와 연결된다고 이야기한다. 신화를 통해서 인간과 동물 사이나 인간과 인간 사이에 대칭적인 관계가 구축됐다는 걸 알 수 있다며, 오히려 국가가 태어나면서 이런 대칭 관계가 깨져나가 비대칭 사회가 됐다고 말한다. 곰, 즉 동물을 귀하게 여기던 그 시대, 곰이 인간이 되고 인간이 곰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 신화 속에 사람들은 오히려 타인에 대한 공감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인간적이었다고 말한다. 

나카자와 교수는 대칭성을 이루던 사회에 지혜의 힘은 인간이 동물이나 식물을 향해 무자비하게 기술력을 휘두르는 걸 저지해왔다고 말한다. 신화가 지혜의 전달자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부족이 생겨나고 수장도 생겨났다. 이 책에서는 남아메리카 인디언 사회를 관찰한 미국 인류학자 로위가 분석한 수장의 역할도 소개한다. 수장은 평화를 유지하는 데 힘쓰며, 재물에 애착을 가져서는 안 되며, 말솜씨가 뛰어난 자만이 될 수 있단다. 국가가 출현하기 전까지 샤먼이나 수장에 역할로 평화를 유지했다. 그러다가 인간과 자연과의 조화가 깨지면서 대칭성의 사회가 붕괴되고 왕과 국가가 어떻게 나타나게 됐는지를 설명한다. 식인으로 상징되는 자연권력을 스스로 몸안에 체현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왕이 출현하면서 야만은 탄생하게 된다. 야만스런 면이 없는 동물과 대칭 관계를 유지하고자 했던 신화에 의해 철학을 하던 사람들도 전혀 야만스럽지 않았다고 한다. 왕이라는 존재를 허용하면서부터, 동물이나 식물도 단지 인간의 필요를 위해 존재하는 대상으로만 보게 되면서 인간은 야만적인 행동을 하게 되었고 국가가 저지르는 온갖 형태의 야만이 활개를 치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예전에는 문명, 인간사회, 국가 등과 야만을 연결짓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다. 야만은 미개함, 혹은 인간답지 못함을 이야기하는 거라고 막연하게 인식해왔을 뿐이다. 요줌처럼 야만스럽다고 느껴지는 일들이 계속적으로 벌어지는 사회 속에서 살다보니 더욱 야만의 기원을 말하는 신화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국가가 출현하기 훨씬 이전에 원시사회를 배우면서도 그저 하나의 문화로만 받아들였지 어떤 철학이 있는지를 살피지 못했는데, <곰에서 왕으로>는 신화에 바탕한 철학에 힘을 오늘에도 제대로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일깨워 준 책이다. 

그러고보니 영화 설국열차에 마지막 장면도 떠오른다. 소녀와 '곰'이 새로운 문명을 예고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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