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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희씨 이야기/책읽기

'그의 슬픔과 기쁨'을 듣다

수희씨 2014. 7. 23. 19:43

용산, 제주 강정, 밀양, 그리고 쌍용자동차. 국가 폭력에 짓밟힌 현장들. 여기에 세월호까지너무나 아픈 곳들이다. 삶의 현장에 아프지 않은 곳이 없지만 최근 몇 년 간 이어진 잔인한저 현장들을 들여다보며 무엇보다 가장 아팠던 건 사람이었다. “여기 사람이 있다, 함께 살자, 이대로 살게 해달라, 우리 아이들을 잊지 말아 달라는 외침에 울어야 했다.

엄기호 책 <단속사회>를 읽었을 때 나를 멍하게 했던 대목이 있었다. 엄기호는 곁이 있는 글은 다르다고 말했다. 곁은 말하는 자리가 아니라 듣는 자리라고. 말이 되지 못한 말까지 말로 들릴 때까지 곱씹고 끊임없이 물으며 들어야 한다고. 나는 이 곁이 있는 글이라는 말이 맘에 걸려 몇 번이나 곱씹었다. 현장에서 활동하며 연대하는 차원을 넘어 그 사람들 삶 속에 들어가 쓴 글을 말하기 때문이다


여기 또 하나 곁이 있는 글이 세상에 나왔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26명의 구술을 묶어 집필한 책 <그의 슬픔과 기쁨>이다. CBS 라디오PD면서 책읽기를 좋아해 책도 꽤 많이 펴낸 인기작가 정혜윤이 그들 곁에서 이야기를 들었다. 정혜윤은 그들이 이번 삶 속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궁금했다고 한다. 그들은 그에게 어떤 삶을 살았는지, 왜 그렇게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를 이야기한다. 77일간에 옥쇄파업 이후 2009년부터 2013년까지 이야기다.

그들은 쌍용차는 꿈의 직장이었다고 말한다. 근근이 먹고 살아왔는데 많은 월급을 받아 빚도 값을 수 있었고, 공장과 기숙사만을 오가며 열심히 모은 돈으로 조그만 아파트도 가질 수 있게 했던 곳, 그들이 아는 세상의 전부였던 바로 그곳이다. 77일간 옥쇄파업이 벌어질 때도 그들은 공장을 지켜야 했기에 전기가 끊어진 상태에서도 자가발전기를 고쳐 도장공장을 지켜냈다. 내가 다시 돌아가 일해야 하는 곳이기에, 한솥밥 먹었던 기억들의 소중함 때문에. 그들은 우리의 삶, 우리의 피로, 우리의 몸이 이 쌍차를 지키고 버티게 하는 힘이었다고 이야기한다. 77일간에 파업 기간 전기와 물도 끊겼고 급기야는 경찰들에 의해 토끼몰이 당하듯 쫓기며 두들겨 맞고 테이져건에도 맞았다

77일간 공장안에서 파업을 하면서 그들은 용역 깡패도 경찰도 무서웠지만,그 밤에 몰래 몇 백명이 나가는 거를 보면서도 계속 자는 척 해야 하는 현실이 정말 슬펐다. 그렇지만 그들은 그 과정에서 굽힐 수 없는 인간의 의지 같은 것을 봤다고 했다. 스스로 견뎌낸 게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 견딜 수 있었다고 말한다.

쌍차 파업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공장 파업 이후 해고자들은 거리로 나왔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동료의 죽음에 슬퍼하며 대한문 앞에 분향소를 차려놓고 지켰다. 분향소도 차렸고, 굴뚝에도 올랐고, 송전탑에도 올랐다. 그런데 쌍용차 사태의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다. 노동자만 책임지고 경영진은 책임지지 않는 현실. 쌍차 문제의 본질은 진실과 죽음이라고 그들은 말한다.

나는 <그의 슬픔과 기쁨>을 읽으며 몇 번이나 울었다. 눈물이 번져서 책 읽기가 힘들었다. 그들의 이야기에 열심히 귀 기울인다. 윤충렬은 어깨와 무릎이 아파도 참으며 일하던 사람이었다. 그는 사람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한상균 위원장을 믿었다고 한다. 이현준은 내가 해고되지 않아도 나는 같이할 것이다 생각했지만 친하게 지내던 이들에 마음 밑바닥을 보게 되는 것이 가장 무서웠다고 말한다. 김정욱은 파업 기간에 사람들이 보였던 의지나 결기의 힘 상상도 못할 것이라고 했다. 최기민은 노동자들이 근육을 많이 쓰니까 근골격계 질환 앓아 힘든 과정을 좀 완화시키면서 일하는 방법, 건강권, 노동환경 개선에 관심이 많았다고 했다. 그는 끝까지 함께 살자는 말에 매달렸다고 한다. 이번 7.30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나선 김득중은 그 어떤 경우에도 낙관적인 사람으로 통했고 강해지고 싶었다. 쌍용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 한윤수와 서맹섭은 굴뚝에 올라갔다. 번개가 너무나 두려웠고 겁나 편지를 썼단다. 오로지 아이들에게 비정규직 굴레를 물려주지 않는 것이 꿈이었다며 죽으면 안돼 라고 생각했다. 이창근은 현장 따로 집 따로가 아니라 공동체적인 삶을 만드는 게 꿈이란다. 쌍차에서 받은 임금으로 빚을 다 갚아 이대로 살고만 싶었다던 고동민은 파업 과정에서 이렇게 살아도 되나 싶었다고 한다. 문기주는 .쎄 빠지게 일해도 월급 많이 못 받고 장갑이나 작업복도 주지 않아 내돈주고 사야 하는데서 부당함 느꼈고, 윤제선은 세상에 대고 내 이야기를 외쳐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생각에 나섰다고 했다.

 파업 투쟁을 하면서 그들은 단단해졌고,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 의리 때문에 투쟁에 결합했고, 몸은 힘들었어도 마음은 편하다고 했다. 연대해 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무너지지 않았다고, 마음이 모이면 무쇠도 자른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그렇게 그들은 끝까지 함께 있는 것을 택했다.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그의 슬픔과 기쁨>은 평범한 노동자에 일상이 국가와 자본의 폭력에 어떻게 무너졌는지, 그 무너짐 속에서 어떻게 버텨내는지, 무엇이 그들을 살게 했는지를 담담히 이야기 한다. 그들 곁에서 이렇게 이야기를 들어준 이가 있어 다행이다. 이 책을 읽으며 그들을 외롭게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곳곳 투쟁 현장에서, 아픈 사람들 곁에서 이야기를 들어주고 기록하는 이들이 참 고맙다. 그들이 삶을 포기 하지 않도록 손 잡아주는 일을 우리가 해야 하지 않을까. 우선 노란봉투부터 보내야겠다.

 

<H- 20000 프로젝트에 참여한 쌍용자동차 노동자들 모습. 출처: 희망지키미 http://hope.jinbo.net/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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