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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이야기

시인이 사는 시골 마을에 무슨 일이 벌어졌나

수희씨 2013. 5. 20. 15:59


복사꽃   / 송찬호


 옛말에 꽃싸움에서는 이길 자 없다 했으니

그런 눈부신 꽃을 만나면 멀리 피해가라 했다

언덕 너머 복숭아밭께를 지날 때였다

갑자기 울긋불긋 복면을 한

나무들이 나타나

앞을 가로막았다


 바람이 한 번 불자

나뭇가지에서 후드득 후드득

꽃의 무사들이 뛰어내려 나를 에워쌌다


나는 저 앞 곡우(穀雨)의 강을 바삐 건너야 한다고

사정했으나 그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럴 땐 술과 고기와 노래를 바쳐야 하는데

나는 가까스로 시 한 편 내어놓고 물러날 수 있었다


 지난 7일 행복나무 아카데미 행복한 상상력 첫 번째 강의 <천년의 대화 상상의 행복>에서 김승환 교수가 텍스트로 삼아 이야기를 풀어 낸 시가 바로 송찬호 시인이 쓴 <복사꽃>이다. 처음 읽는 시였다. 송찬호 시인은 보은에 살고 있고, 교과서에 시가 실릴 정도로 유명한 시인이란다. 나는 그가 그렇게 유명한 시인인지도 몰랐다.

 

김승환 교수는 그의 순결할 정도의 무구함과 경이로운 경건함은 수도사의 깊은 심연에 이르러 있다. 그 자세야말로 송찬호의 송찬호 다운 시가 생산되는 이유라고 밝혔다. <복사꽃>꽃에 취한 한 인간의 황홀경을 이런 언어, 이런 심상, 이런 리듬으로 담아내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놀라운 일이라고 평가했다.

 

송찬호 시인의 시 <복사꽃>을 이제 알게 되었는데, 일주일 후 송찬호 시인이 내 앞에 서 있다. 풀꿈 강좌에 송찬호 시인이 강연에 나선 것이다. 송찬호 시인은 쑥쓰러운 듯한 낫빛으로 자신이 살고 있는 보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시인은 자신이 살고 있는 삶의 자리, 시가 나오는 환경을 말하는 게 의미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젊은이들이 없는 농촌, 홀로 남은 노인네들에게 유일한 위안이 되어주는 TV. 굳이 보은이 아니어도 어디나 마찬가지 풍경이다. 송찬호 시인은 시인이 살고 있는 마을이 어느덧 원주민들을 소외시키고, 자본에 점령되어가고 있다며 시인은 시인이 살고 있는 보은에 생겨난 변화들을 이야기했다

농업 중심이던 농촌이 어느새 그나마 경쟁력 있다는 이유로 축산업에 더 매달리게 되었다며, 축산업도 이제 기업화 되어 가는 추세란다. 최근 보은에서는 농가와 축사 사이 거리 때문에 조례 개정을 하려고 하는데 이익을 내세우는 개인이나 기업들은 이미 재빠르게 움직이고 있다며 씁쓸해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고속도로가 생겨나면서 산업단지가 들어섰다. 자치단체장이나 공무원들은 일자리가 생겨난다며 산업단지가 들어오는 것을 당연하게 말한다. 그리고 아무도 먹고사는 문제 앞에선 별다른 문제제기를 더 이상 하지 않는다

어느 새 농촌에 살던 원주민들은 쫓겨나가고 자본에 점령되는 현실 앞에 무기력하다. 시인은 최근에 또 보은 대추를 특산품으로 하면서 멋진 은행나무 가로수가 하루아침에 대추나무로 바뀌기도 했다며 이런 결정을 하는데 주민들 의견조차 묻지 않고 해버리는 현실이 어이없다고 했다. 수많은 구호들이 내걸린 플랭카드를 보면서도 시인은 장엄한 삶의 연출을 보는 듯 슬로건 너머로도 삶은 계속되는데 어느 새 우리는 얘기할만한 뭔가를 잃어버린 게 아니냐고 말했다.

송찬호 시인은 보은읍내에 커피숍이 네 개나 들어서는 걸 보면서 왜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며 도시의 소비와 욕망을 따라 가기에만 급급한 현실을, 도시 변방에 지나지 않게 돼버린 농촌 현실을 이야기 했다.

 송찬호 시인은 강연을 위해 준비한 많은 이야기가 있는데 반도 풀지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또 자신의 얘기가 불편한 사람도 있을 거라고 말했다. 그러나 시인은 자신이 보고 느낀 현실을 말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시를 쓰는 사람들에게 운명처럼 다가오는 현실, 시대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송찬호 시인은 글쓰는 사람은 상황에 예민해야 한다며 말과 생각 행동에 예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맨몸으로 부딪치는 부정정신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인은 미지의 독자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 열심히 시를 쓴다고 말했다.

 송찬호 시인은 동시도 쓴다. 최근에는 제비가 20년 만에 돌아온 것을 보고 시를 썼다고 한다. 20년만에 돌아온 제비를 보면서 삶의 서사가 다시 돌아왔다고 느꼈다는 시인은 동시 쓰는 일도 쉽지 않다며 욕심이 많아서 동시가 날 외면한다고 농을 던졌다. 시인은 강의 끝에 자신의 시 몇 편을 낭송했다. 그 가운데 <찔레꽃>이라는 시가 다가왔다.

 농촌이 무너져 가고 있는 현실을 우리는 모르지 않았다. 시인의 표현대로 알면서도 먹고 사는 문제라는 핑계로 짐짓 모른 척 해왔다. 시인이 말하는 현실을 들을 수 있어 귀한 시간이었다. 2013년 오월 처음으로 알게 된 송찬호 시인오월이 다 가기 전에 시인의 시집을 사러 서점에 가야겠다

 


찔레꽃


그해 봄 결혼식 날 아침, 네가 집을 떠나면서 나보고 찔레나무숲에 가보라 하였다.

나는 거울 앞에 앉아 한쪽 눈썹을 밀면서, 그 눈썹 자리에 초승달이 돋을 때쯤이면

너를 잊을 수 있겠다, 장담하였던 것인데,

읍내 예식장이 떠들썩했겠다, 신부도 기쁜 눈물 흘렸겠다,

나는 기어이 찔레나무숲으로 달려가 덤불 아래 엎어놓은

하얀 사기 사발 속 너의 편지를 읽긴 읽었던 것인데, 차마 다 읽지는 못하였다.

세월은 흘렀다. 타관을 떠돌기 어언 이십 수년 삶이 그렇데,

징소리 한 번에 화들짝 놀라 엉겁결에 무대에 뛰어오르는 거.

어쩌다 고향 뒷산 그 옛 찔레나무 앞에 섰을 때, 덤불 아래 그 흰 빛 사기 희미한데,

예나 지금이나 찔레꽃은 하얬어라, 벙어리처럼 하얬어라,

눈썹도 없는 것이 꼭 눈썹도 없는 것이 찔레나무 덤불 아래서

오월의 뱀이 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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