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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희씨닷컴
[제주4.3 기행] 동백꽃 지다 본문
누구를 위한 용서, 평화인가 우리와 함께 4.3 기행에 나선 송승호 선생님은 4.3 평화 기념관부터 둘러보자고 하신다. 4.3 평화 기념관은 제주 4.3 항쟁의 시작부터 지금까지를 전시하고 있다. 특히 당시 사건을 기리는 다양한 아트워크 작품들이 설치되어 있어 이해에 도움을 준다.
몇 문장의 글로 4.3 사건을 말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정부와 미군정에 의해 주민들이 학살되어 그 피로 제주는 물들었다. 송승호 선생님은 잘못을 저지른 자들은 용서해달라고 빌지도 않았는데 용서하자고 말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4.3 평화기념관을 나와 평화 공원을 둘러봤다. 제주 4.3 사건으로 희생당한 수많은 주민들의 이름이 벌판에 빼곡이 들어서있다. 특히 아이를 끌어안은 채로 죽은 어머니를 형상화한 작품을 보면서는 눈물 짓지 않을 수 없었다. 왜 죽어야 하는지도 모른 채 고귀한 생명들이 어머니의 품에서 마치 동백꽃이 지듯이 뚝뚝 떨어졌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역사 4.3 항쟁. 이명박 대통령은 재임 기간 동안 4.3 기념식에 한 번도 참여하지 않았고, 4.3 재단에 지원마저 끊어버렸단다. 게다가 보수 세력들은 4.3 사건에 희생당한 제주도민들을 폭도로 몰아가며 상처를 덧씌우고 있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이미 정부에서 진상 규명까지 마친 상태지만 사람들은 4.3에 대해 본격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동백숲 속 목시물굴을 찾아 1948년 11월21일 선흘리 일대가 토벌대에 의해 불타고 주민들은 선흘곶 일대 곶자왈과 동굴을 은신처로 삼았다고 한다. 마을주민들이 숨어 있던 목시물굴을 찾았다. 딱 보기에도 작은 입구다. 이 작은 동굴에 2백여명이 넘는 선흘 주민들이 피해있었단다. 당시 토벌대가 굴 속에 수류탄을 던져 주민들에게 나올 것을 종용했고, 아이들만이라도 살려보겠다고 나온 주민들을 향해 토벌대가 가차 없이 총을 쏘았다고 한다. 송승호 선생님 설명을 들으며 동백나무 숲에 있는 작은 굴을 들여다 보고 있노라니 환영마저 어른거린다. 옹기종기 모여 밥을 해먹고 이야길 나누다 밤이 되면 어둡고 좁은 동굴로 들어가 몸을 피해야 했던 사람들 말이다.
목시물굴에서 선흘리 동백나무 숲 일대를 걷는다. 걷다보니 호수도 나온다. 곶자왈 습지. 따뜻한 햇빛 아래 먹먹해진 마음을 녹인다. 키가 훌쩍 큰 동백나무 숲, 그리고 제주도에서만 볼 수 있다는 동백꽃을 보며 걸었다.
낙선동 성터에서 만난 할아버지 점심을 먹고 낙선동 성터로 향했다. 1949년 봄에 무장대와 주민들을 분리시키기 위해 모든 마을에 성을 쌓게 하고 전략촌을 만들게 했단다. 낙선동 성도 그렇게 만들어졌다. 낙선동성을 둘러보고 있는데 한 할아버지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당시 열일곱살이었던 할아버지가 우리를 위해 이야길 들려줬다. 할머니들까지 돌짐을 지게 했으며, 작은 함바집에 세 가족이 모여 생활했단다. 할아버지는 당신의 며느리도 청주 사람이라며 반가워하며 친절하게 설명해주셨다. 돌아가는 길에는 귤도 쥐어 주셨다. 역사 답사를 다니면서 당시 생생한 증언을 듣게 되니 우리 여행단이 운이 좋다.
순이 삼촌, 북촌리에서 낙선동 성터를 나와 찾아간 곳은 북촌리다. 북촌학살 사건은 1949년 1월17일 월정리에 주둔하던 군대가 함덕으로 이동하면서 북촌마을 어귀에서 무장대 기습을 받아 군인 두명이 죽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군인들은 북촌 초등학교 운동장에 주민들을 모아놓고 마을 전체를 불질렀다. 군경가족을 제외한 주민들이 20명 단위로 묶여 옴팡밭에 끌려가 차례로 학살되었다. 이 마을 희생자는 479명이다. 마을 주민 전체가 집단학살되었다. 해마다 음력 12월18일이 되면 온 동네가 제사를 지낸단다.
“더 이상 죽이지 마라. …시체 산 피 바다… 원한이 사무쳐 구천에 가득할 때 젖먹이 하나 어미 피 젖 빨며 자지러지게 울고 더 이상 죽이지 마라 너희도 모두 죽으리라”
기념관을 나오니 함덕 해수욕장을 뒤로 하고 애기무덤들이 보이고 위령비가 서 있다. 어미 품에서 눈조차 뜨지 못하는 아이까지 죽였단다. 북촌리에서 부는 바람을 맞으며 모두 할 말을 잃었다. 이번 여행에 함께 한 어린 친구들도 슬펐던 모양이다. 제주도가 이렇게 슬픈 역사를 가진 섬인 줄 몰랐다며 슬펐다고 말했다. 또 제대로 알아야 하겠다는 당찬 포부도 밝혔다. 끝나지 않은 역사를 내버려 둘 수만은 없다고 했다. 한 번의 기행으로 4.3을 다 알게 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제 겨우 제주의 속내를 들여다봤을 뿐이다. 역사의 숲을 건너며 오늘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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