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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수희씨 이야기 (168)
수희씨닷컴
나는 재스민이예요. 이제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어요. 잠시 여기에 앉아서 숨 좀 고를게요. 미처 약도 챙기지 않고 나왔는걸요. 당신들은 나를 비난하겠지요. 잠시만요. 숨이 또 가빠오네요. 당신이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아도 다 알아요. 그렇지만 내게도 다 이유가 있었다구요. 가만 있어봐요. 그이랑 처음 만날 때 들었던 블루문이 흐르는 군요. 이 노래가 흐를 때 우린 운명처럼 만났어요. 못다한 내 이야기를 좀 해도 될까요? 이렇게 묻는 건 나로서도 처음이예요. 늘 내 곁에는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젠 아무도 없군요. 그렇지만 당신이라도 들어줘야 해요.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할까요? 아, 남편 할을 만난 이야기부터 해야겠군요. 입양돼서 한때 행복하기도 했지만 편한 삶은 아니었어요. 내가 꿈꿔왔..
용산, 제주 강정, 밀양, 그리고 쌍용자동차. 국가 폭력에 짓밟힌 현장들. 여기에 세월호까지… 너무나 아픈 곳들이다. 삶의 현장에 아프지 않은 곳이 없지만 최근 몇 년 간 이어진 ‘잔인한’ 저 현장들을 들여다보며 무엇보다 가장 아팠던 건 ‘사람’ 이었다. “여기 사람이 있다, 함께 살자, 이대로 살게 해달라, 우리 아이들을 잊지 말아 달라”는 외침에 울어야 했다. 엄기호 책 를 읽었을 때 나를 멍하게 했던 대목이 있었다. 엄기호는 ‘곁이 있는 글’은 다르다고 말했다. 곁은 말하는 자리가 아니라 듣는 자리라고. 말이 되지 못한 말까지 말로 들릴 때까지 곱씹고 끊임없이 물으며 들어야 한다고. 나는 이 ‘곁이 있는 글’이라는 말이 맘에 걸려 몇 번이나 곱씹었다. 현장에서 활동하며 연대하는 차원을 넘어 그 사람..
지난 주 목요일, 청주에 세월호 유가족들이 왔다. 청주에 도착한 유가족들은 도지사도 만나고 길거리에서 서명전도 벌이고 기자회견을 하고 저녁무렵에는 촛불집회까지 함께 했다. 나는 유가족 분들을 그날 오전 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자리에서 만났다. 고개를 푹 숙이고 걸어오는 분들을 보는 순간 가슴에서 무언가가 치미는 것 같았다. 눈물도 살짝 났다. 나는 차마 나설 수 없어서 뒷모습만 봤다. 그런데 그 뒷 모습에는 아이들이 살아 있었다. 아이들 이름이 하나하나 적혀있는 티셔츠를 입은 2학년 3반 학부모님들이다. 아, 얼마나 힘들었을까. 신문이나 방송 뉴스로 세월호 사건을 접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에 아픔이 느껴졌다. 어머님에 등에서 박예슬 이라는 이름도 눈에 들어왔다. 구두 디자이너가 꿈이라는 예..
언젠가는 꼭 JS 이야기를 한번쯤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자유주의자 고종석. 그는 한때 기자였지만 지금은 파워트위터리안이다. 그는 트위터에서 스스로를 JS라 칭한다. 나도 따라서 그를 JS라 부른다. 한때나마 기자를 꿈꿔왔던 내게 고종석은 참 멋진 기자였다. 한국말로 기사를 잘 쓰는 것도 모자라 그는 영어와 프랑스어 등 외국어도 잘 한다고 했다. 기사만 잘 쓰는 게 아니라 소설도 썼다. 참 그는 언어학 박사 학위 소유자이기도 하다. 내가 처음 고종석 소설을 읽은 게 「기자들」 이었다. ‘유럽의 기자들’이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한 경험을 바탕으로 쓴 이 소설은 고종석을 통해 본 유럽사회, 기자사회, 이방인과의 사랑 등 낭만 그 자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이후에는 「사랑의 말, 말들의 사랑」 같은 우리말을 ..
“나는 옷을 통해 여성의 몸의 움직임을 바꾸고 생각을 바꾸고 자존심을 갖게끔 노력했다” 한국 패션에 살아있는 역사, 노라노 패션디자이너의 삶을 다룬 영화 를 봤다. 꼿꼿한 허리와 갸냘픈 몸매, 곱게 화장한 얼굴과 길게 붙인 속눈섭, 화려한 장신구.....여든 다섯에도 노라노는 참 멋진 모습이었다. 겉모습보다 그가 옷에 대해 가지고 있는 철학이나 당당하게 열심히 살아낸 삶에 존경심을 갖는 건 영화 속 스타일스트 서영은의 말처럼 당연했다. 서영은은 우리가 코코샤넬이나 비비안웨스트우드에 대해서는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정작 우리나라 패션을 있게한 노라노 디자이너 존재자체에 대해서도 모르고 있었다며 그녀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자 전시회를 기획한다. 영화 는 그 전시회 기획 과정을 보여주는 한 편으로 노라노의 패션에..
내가 경주엘 처음 간 게 국민학교 수학여행. 그리고 중학교,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 다녀왔다. 사실 그 때는 경주의 맛, 멋을 잘 몰랐다. 대학에 들어가 답사로 다녀온 경주도 벅차긴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하루종일 남산을 오르락 내리락했던 기억도 나고, 한 밤중에 불국사를 산책했던 기억도 새롭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도 경주는 2,3년에 한번씩은 찾았다. 경주는 가면 갈수록 좋아지는 내가 좋아하는 곳이 되었다. 대학친구와 갑작스럽게 떠났던 경주도 좋았고, 조카들과 함께 시끌벅적하게 다녀왔던 경주도 좋았다. 우리 가족 모임에서도 경주로 두번이나 단체 여행을 하기도 했다. 재작년 봄 4월에도 가족 여행을 경주로 다녀왔는데.....경주에 봄을 기대하고 떠난 여행길에는 눈이 내렸고, 날씨가 너무 추운 나머지 차안과..
세월호 시민분향소가 차려진 상당공원. 그 썰렁한 공간에 몇몇 사람들이 마주하고 앉았다. 각자가 생각하는 세월호 참사 문제를 박근혜 대통령 욕도 해가며 이야기했다. 한 두 시간이 지났을 뿐인데도 참 좋았다. 함께 이야기하니 답답한 마음도 좀 풀어지는 듯 싶었다. 그보다 함께 이야기 한다는 데에 어떤 결속감 혹은 유대감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때마침 읽고 있던 책 엄기호의 『단속사회』도 우리가 정말 제대로 소통하고 있는지, 누구에게 말을 걸어야 하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엄기호는 우리 사회를 단속사회로 표현한다. (사실 ‘사회’라는 말은 쓰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그가 보기엔 우리 사회는 사회라 부를 수 없는 지경이란다.) 단속 사회, 뜻부터 풀어봐야겠다. 엄기호는 책 제목에 ‘쉴새없이 접속하고 끊임없..
며칠 전 인터뷰를 했다. 그냥 짧은 인터뷰가 아니라 ‘활동가’로 살아 온 ‘나’ 에 대한 인터뷰다. 충북시민재단에서 충북지역 활동가들을 소개하는 책을 만드는데 영광스럽게도(?) 내가 거기에 들어간 것이다. 나보다 더 경력이 많은 선배들은 자신은 인터뷰할만한 사람이 아니라며 사양하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는데 나는 덥석 물었다. 워낙에 인터뷰를 좋아하는데 나를 인터뷰해준다니 누군가가 표현하는 ‘나’는 어떤 모습일지 너무나 궁금했다. 인터뷰어에게 받은 질문은 지나치게 평범했다. 어떤 계기로 활동을 시작했는지, 그간 가장 의미 있는 일이나 어려움은 무엇이었는지 등을 물었다. 기대가 컸던 만큼 맥 빠졌다. 왜일까? 나는 대체 뭘 기대했던 것일까. 과연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으로 나를 온전히 보여줄 수 있을까, ..
하릴없는 오후 가끔씩 내가 썼던 글들을 읽을 때가 있다. 분명히 내가 쓴 글인데도 새롭기도 하고 낯설기도 하고 놀란다. 기대치가 낮아서일까. 나는 내가 쓴 글을 보고도 감동할 때도 있다. ‘신이시여, 정녕 내가 이글을 썼단 말인가’, 까지는 아니지만, ‘아니 내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지?, 이 표현은 참 기막히게 좋다’, 뭐 이 정도다. 비문을 발견할 때는 얼굴도 화끈거린다. 내가 쓰는 글은 대부분 ‘잡글’이다. 학술적인 글도 아니고 어떤 이야기를 창작한 글도 아니다. 그저 내 삶을, 내 생각을 쓴다. 그렇다. 난 작가는 아니다. 그래도 내게 글쓰기는 참 중요하다. 나는 매일매일 글을 쓴다. 아침에는 신문을 읽고 정리하는 글을 쓴다. 업무와 관련한 일이다. 본격적인 미디어비평이라 하기엔 수준이 낮은 글..
처음엔 그랬다. 하몽을 먹겠다고 남원까지 다녀오자는 게 그럴듯하지 않았다. 뭘 얼마나 먹겠다고.... 그래도 약속을 했기에 길을 나섰다. 금방이라도 뭐가 쏟아질듯한 흐린 하늘 고속도로를 들어서자 마자 가는 비가 차창을 따라 흘렀다. 두시간여를 달려 남원이 가까워지자 온 세상이 하얗다. 입춘 지나 눈쌓인 풍경을 보니 애틋하기까지 했다. 지리산 생햄이라는 말 하나를 잡고 나선 길이다. 여주인은 우리에게 하몽과 한옥을 내주었다. 한옥 마루에 앉아 와인에 하몽을 먹자하니 이런 호사가 어딨나 싶을만큼 살짝 마음이 들썩거렸다. 내리는 눈 때문에 더 그랬는지 모를 일이다. 여주인은 남편(박화춘 박사)이 흑돼지를 연구하는 바람에 생햄을 만들게 되었고, 스페인으로 하몽 맛을 찾아 다녀온 여행 이야길 들려줬다. 버크셔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