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수희씨 이야기 (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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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페미니즘을 잘 모른다. 단 한 번도 페미니즘을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페미니스트가 싫었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페미니스트를 불편해했다. 페미니스트라 불리는 센(?) 언니들이 좀 유난스럽다고 생각했다. 나는 여자이면서도 페미니즘은 나와는 상관없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땐 세상을 몰랐으니까. 페미니즘 혹은 양성평등 혹은 가부장적인 문화 등에 대한 고민은 결혼과 함께 찾아왔다. 결혼을 하니 이제까지와는 또 다른 세상이 열렸다. 내 남편은 꽤 괜찮은 사람이다. 훌륭한 인격을 갖춘 어른이다. 그렇지만 그는 가부장적인 면모를 가진 사람이다. 내 시부모님이나 남편은 나를 억압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며느리로, 아내로 살아가면서 적지 않은 불만들은 쌓여갔다. 신..
20대 국회, 별 기대도 안했지만 정치판은 정말 한심 그 자체다. 총선 결과를 봐선 개혁이 시작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역시나 아니다. 나는 4.13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질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새누리당은 승리하고 오히려 더불어민주당이 폭삭 망할 줄 알았다. 국민의당 역시 잘해봐야 호남의원들만 살아남겠거니 예상했다. 총선 결과를 보며 역시 국민은 위대하다는 말이 터져 나왔다. 어쩜 이렇게 절묘할까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궁금해졌다. 지난번 소개했던 책 의 저자 김욱 교수는 이번 총선 결과를 어떻게 평가할지 말이다. 그 대답을 들을 수 있는 책이 나왔다. 이번에는 ‘영남 없는 민주화에 대하여’ 라는 부제를 단 이다. 김욱 교수는 에서 왜 영남패권주의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으면서 야권분열에 책임지라며 호남에..
짧은 여름 휴가를 다녀왔다. 이게 얼마만인지.....아기를 낳고 일년이 지났으니 2년만에 떠난 여름 여행이다. 그리고 세식구가 되어 떠난 첫 여름 휴가 여행이다. (이런 날이 오다니.....생각만으로도 벅차다.) 우리가 정한 여행지는 바로 안동이다. 안동은 지난 2009년 여름 휴가 때 다녀오고 7년만이다. 당시엔 지례예술촌이란 고택에서 이틀을 묵었다. 이번에는 구름에 리조트 라는 곳에 "계남고택 사랑채"에서 묵었다. 한옥호텔인 셈이다. 현대식으로 욕실도 만들어 놓아서 한옥의 정취도 물씬 느끼면서도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었다. 여름 휴가철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참 많았다. 한여름 한옥에서의 하룻밤, 방안에 누우니 풀벌레 소리가 들려오고 그리 덥지도 않다. 그렇지만 모기와 벌레들 때문에 문도 맘껏 열지 못한..
한강 작가의 맨부커상 소식에 세상이 떠들썩하다. 나는 맨부커상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십분단위로 작가에 책이 몇백권씩 날개 돋힌 듯 팔려나간다니 대체 어떤 소설일까 궁금하다. 영어를 잘한다면 번역본을 읽어보고픈 마음도 든다. 고기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차마 를 읽기가 좀 그랬다. 내키지 않는다. (이 책을 읽으면 고기 먹기가 힘들어질까봐 겁난다면 웃을라나?!) 그동안 한강 작가 소설은 한 번도 읽어보지 못했다. 그 어느 해보다 뜨거운 오월을 보내면서 를 읽었다. 5.18 광주민중항쟁 (공식 명칭은 광주민주화운동이지만 나는 민중항쟁으로 부르는 게 더 맞다고 생각한다)을 다룬 소설 가운데 최고의 찬사를 받는다니 그 전부터 꼭 읽어봐야지 했던 소설이다. 는 1980년 5월18일부터 27일까지 뜨거웠던 열흘, 도..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날이 좋았던 어느 날 오후 산책하다가 부동산엘 들렀다. 새로운 전셋집이나 알아볼 요량이었다. 부동산 여주인은 요즘 전세가 없다며 좋은 아파트가 싸게 나온 게 있는데 사는 게 어떠냐고 권했다. 우리 형편에 맞지 않는 턱없이 넓은 평수 아파트였다. 나는 그냥 보기만 하는 건데 뭐 어때 하는 마음으로 구경했다. 참 좋았다. 조망도 좋았고, 햇살 가득한 아파트 실내가 그럴싸했다. 조금만 무리하면 우리도 이렇게 좋은 집에서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확 솟구쳤다. 엄청 싸게 나온 거라며 빨리 결정할수록 좋다는 말에 출장 간 남편 핑계를 대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밤 나는 이리저리 몸을 뒤척이며 잠들지 못했다. 내 마음은 벌써 그 아파트에 살림살이를 들여놓을 궁리로 가득 찼기 때..
아가가 아프다. 열이 나더니 콧물이 줄줄 흐르고 기침까지 한다. 작은 가슴이 그르렁 소리로 가득 찼다. 아가는 힘들어서 그런지 자꾸만 품속을 파고든다. 차라리 내가 대신 아프다면 얼마나 좋을까. 세상에 모든 어미들이 왜 이렇게 말하는 지를 이제야 알겠다. 아가에 고통을 없앨 수만 있다면 정말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 흔한 감기를 앓는 아가를 지켜보는 것도 이리 마음 아픈데 세월호 참사로 아이를 잃은 엄마들은 대체 어떻게 살아내고 있을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다. 잠 좀 못자고, 하루 종일 안고 업고 하는 일을 힘들다고 투정부리기가 민망하다.다시 봄이 왔다.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이후 두 번째 맞이하는 봄. 아직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채 이렇게 봄이 다시 왔다. 나는 잊고 지냈다. 세월호..
최근 이라는 꽤 흥미로운 책을 읽었다. 호남의 입장에서 대한민국 정치를 분석한 책이다. 한국정치의 본질적인 문제는 바로 영남패권주의라는 서남대 김욱 교수의 주장을 담은 책이다. 김욱 교수는 광주에서 출생했고, 그간 정치 평론을 꾸준히 해왔다고 한다. 은 미디어를 통해 그다지 자세히 소개되진 않았지만 적지 않은 관심과 논쟁을 일으키고 있는 책이다.김욱 교수는 우리나라 정치의 주요 모순은 지역인데 왜 지역틀로 분석하는 글은 원치 않는지 모르겠다며 나름 그 이유를 밝힌다. 우선은 영남패권주의자의 입장에서 지역 분석을 원치 않고, 민주진영 그 중에서도 친노 진영에서 지역분석 틀을 거부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게다가 진보 세력조차도 지역분석 틀을 거부한다며 진보의 관념 속에 지역은 없다고 주장한다. 김욱 교수는 영..
우리도 그들처럼 그렇게 걸었다 장석주 시인이 스물다섯살 연하의 시인과 결혼을 했는데 책으로 결혼식을 대신한다는 기사가 신문에 실렸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로맨스 아니 결혼은 어떤 모습일까, 게다가 책으로 결혼식을 하다니 놀랐다. 이렇게 멋진 생각을 하다니 시인들은 정말 다르구나 싶었다. 궁금했다. 그렇게 해서 훔쳐보게 된 그들의 이야기는 바로 이다. “우리는 새벽의 나무 둘처럼 행복합니다”라며 행복을 노래한 이 책은 그들의 결혼 선언으로 장석주, 박연준 두 시인이 한 달 간 시드니에서 머문 이야기를 묶어냈다. 이 책은 마치 두 사람이 하나의 결혼으로 묶이듯 두 사람의 이야기가 하나의 책으로 묶였다. 빨간 글씨로 인쇄된 앞부분은 아내 박연준 시인의 이야기이고 파란색 글씨의 뒷부분은 남편 장석주의 이야기다..
아가가 잠들었다. 수면조끼를 입히고 이불을 덮어주고 살금살금 방문을 빠져 나왔다. 아직 내가 할 일은 남았다. 젖병도 닦아야 하고, 딸랑이도 깨끗이 씻어야 하고, 빨래도 널어야 한다. 오늘도 이렇게 하루가 간다. 그래도 주말 저녁이라 조금은 수월하다. 남편이 옆에 있으니까. 겨우 여기까지 썼는데 아가 잠투정 소리가 어둠을 뚫고 터졌다. 얼른 달려가 공갈젖꼭지를 물렸다. 아가는 아직도 깊은 잠에 빠지지 않은 모양이다.결혼하면 아기가 금방 생길 줄 알았다. 한 두 해가 지나도 별다른 소식이 없었다. 조금만 더 마음을 편하게 먹고 기다리면 되겠지, 생각했다. 그 시절 임신할 준비를 하겠다며 읽은 책이 바로 『황금빛 똥을 누는 아기』(최민희 지음)였다. 민언련 활동가였던 최민희씨가 나이 마흔에 아이를 낳고 기른..
백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과연 백일의 기적이 우리에게도 찾아올까? 나는 요즘 아이 엄마들만 보면 빼놓지 않고 물어본다. 백일이 되면 정말 긴 밤이 찾아오는지 말이다. 백일이 가까워 오는데 우리 아가는 여전히 두 시간 간격으로 ‘정확하게’ 깨서 보챈다. 분유 좀 덜 먹여 볼라고 달래도 보고 보리차도 먹여봤지만 분유를 먹어야만 잔다. 그 전에는 세 시간도 잤는데 요즘엔 잠이 더 짧아진 것 같아 슬슬 불안하기까지 하다. 엄마들에 대답은 한결같다. 백일됐다고 딱 잠을 길게 자는 건 아니지만 어느 날 갑자기 그런 날이 찾아온다고. 태어날 때 보다 훌쩍 커진 아가를 나는 여전히 안아서 재운다. “수면교육을 할 때다, 낮에 많이 먹여 뱃고래를 늘려 밤중 수유를 중단하라”고 책에는 분명 써져 있지만 현실적으로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