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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희씨 이야기/책읽기

딸 바보 보다 페미니스트 어때?!

수희씨 2016. 8. 21. 22:03


나는 페미니즘을 잘 모른다. 단 한 번도 페미니즘을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페미니스트가 싫었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페미니스트를 불편해했다. 페미니스트라 불리는 센(?) 언니들이 좀 유난스럽다고 생각했다. 나는 여자이면서도 페미니즘은 나와는 상관없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땐 세상을 몰랐으니까. 페미니즘 혹은 양성평등 혹은 가부장적인 문화 등에 대한 고민은 결혼과 함께 찾아왔다. 결혼을 하니 이제까지와는 또 다른 세상이 열렸다. 내 남편은 꽤 괜찮은 사람이다. 훌륭한 인격을 갖춘 어른이다. 그렇지만 그는 가부장적인 면모를 가진 사람이다. 내 시부모님이나 남편은 나를 억압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며느리로, 아내로 살아가면서 적지 않은 불만들은 쌓여갔다. 신혼에는 무척이나 싸웠다. 살아가면서 적당히 (나 자신과) 타협하기도 했고, 서로를 알게 되니 싸우지 않고 잘 지내는 법도 익혔다. 그래도 문제는 남았다. 십년동안 아이가 생기지 않으면서 오는 여러 갈등으로 내게는 상처가 된 순간순간들이 있다. (지금에야 아기가 생겼으니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지만 말이다.) 그 순간순간마다 난 치열하게 싸우지 않았다. 시어머니에 걱정은 그저 잔소리로 여겼고, 남편과는 문제를 정면으로 파고들지 않은 채 괜찮은 척만 했다. 아가가 태어나니 새로운 문제들이 또 생겨나고 고민도 깊어진다. 부부가 함께 육아에 힘쓸 수 없는 이 사회구조도 문제지만 여성 혐오가 넘치는 바로 대한민국 사회에서 딸을 키워야 하고, 내 딸이 그런 사회에서 살아가야하기 때문이다.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 메갈리아 사태 등에서 나타난 여성혐오와 그 반응 등으로 인해 최근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 다양하게 표출되는 모양이다. ‘페미니즘 출판 전쟁이라 할 만큼 페미니즘 관련 책들이 많이 나오고 팔리는 추세란다. 페미니즘, 아니 일부 페미니스트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에 내켜하지 않던 나 역시 페미니즘 관련 책들을 두리번거렸다. 그렇게 해서 만나게 된 책이 바로 록산 게이의 <나쁜 페미니스트>이다. 정말 재미나게, 공감하며 읽었다.

 

보그를 그냥 좋아서 읽고, 핑크색도 좋아하고, 남자를 좋아하고, 남자가 해야 할 집안일이 있다고 생각하고, 오르가즘에 도달하지 않고서도 느끼는 척 하기도 한다고 스스럼 없이 밝히는 록산 게이는 스스로를 많은 단점과 모순으로 똘똘 뭉친 보통의 인간이라며 나쁜 페미니스트가 되기로 했다고 밝힌다. 설령 나쁜 페미니스트라 할지라도 페미니스트가 아예 아닌 것보다는 훨씬 낫다는 게 그녀의 주장이다. 그녀도 처음엔 페미니즘 운동에 대한 합리적인 이해가 부족했으며, 페미니스트가 되면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며 문제나 일으키는 사람으로 보일 것이란 두려움이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페미니즘은 어떤 대단한 사상이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의 성 평등임을 안 순간 페미니즘을 받아들이는 게 놀라울 정도로 쉬워졌다, 페미니즘이 자신에게 평화를 가져다주고 어떻게 글을 쓰고 어떻게 읽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인도해 주는 원칙이 되어주었다고 밝힌다.

 

록산 게이는 참 거침없다. 그녀는 어떤 사회현상이나 문화, 그리고 미디어에 나타난 페미니즘 이슈에 대해 이렇게 거침없는 솔직함으로 페미니즘을 풀어낸다. 그녀는 나쁜 페미니스트가 아니라 친절한 페미니스트다. 록산 게이는 나쁜 페미니스트가 되어 세상에 나가고 싶고, 이렇게 해서 더 좋은 여성이 되고 싶다. 나의 현재와 과거를 솔직하게 내보이고 내가 어디에서 비틀거렸고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전부 다 털어놓고 싶다고 말한다. 실제 이 책 <나쁜 페미니스트>에 실린 발랄한 그녀의 글이 그렇다. 여성학자 정희진은 정직한 글을 쓰는 록산게이가 부럽다며 이 책이 여성주의적 글쓰기 모델이 돼 이런 책이 많이 나오길 기대한다고 추천사에 썼다. 나도 록산 게이의 정직한글을 보며 페미니즘을 더 공부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좋은 페미니스트를 찾지 말고 각자가 이 세상에서 우리가 가장 보고 싶은 페미스트가 되어 보면 어떨까라는 록산 게의 제안에 내 맘도 움직였다. 딸을 너무나 사랑하는 남편에게도 꼭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여보, 우리 딸 바보 보다는 페미니스트가 되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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