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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수희씨 이야기 (168)
수희씨닷컴
어느 날 갑자기 가족을 떠나버린 아버지. 박범신 소설 은 그런 아버지를 찾아가는 아니 이해하는 과정을 담은 이야기다. 그날은 시우의 생일이었다. 엄마는 집으로 일식집 주방장을 불러 요리를 시켜 생일 파티를 준비한다. 그런데 시우의 아버지 선명우는 그날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아버지가 가출하자, 아버지를 그림자로 만든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 버렸다. 시우와 언니들은 부잣집(?) 딸로 원하는 것을 모두 다 누리며 살아왔는데 아버지가 떠나자 모든 걸 잃게 된다. 사실 시우와 언니들, 시우의 엄마가 누려왔던 풍요는 아버지 선명우 등에 꽂은 '빨대' 덕분이었다. 사막 모래 바람을 참아내며 하루 몇 시간 밖에 못자면서 돈을 벌었고, 번듯한 회사의 간부까지 됐지만 선명우는 여전히 가난했다. 아내의 허영심은 그를 계..
2013년 올해도 이제 꼭 하루가 남았다. 올 한해 어떤 일들이 있었나. 나는 일기를 쓰지 않는다. 다이어리에 기록도 열심히 하지 않는다. 아침부터 컴퓨터를 켜고 페북을 들여다봤다. 내가 무슨 말을 했나, 무슨 일을 했나, 무엇에 감동했나 살펴봤다. (내게 페북은 그런 공간이다. 감동받은 순간들, 누군가에게 말 걸고 싶을 때에 나를 표현하는 공간이다.) 그다지 큰일은 없었다. 나는 올 한 해도 무사하게 잘 지냈다. 내 일 년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마흔, 두렵지 않아 나는 올해 마흔이 됐다. 마흔이 되면서 좀 성숙한 어른이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미숙했다. 거짓된 욕망에 번번이 속았으며, 후회할 줄 알면서도 탐욕스러웠다. 아닌 척 했지만 나는 잘 알고 있다. 괜찮지 않으면서 괜찮은 척 했다. 내 맘..
이달에는 제대로 책 한권을 읽지 못했다. 책을 손에 들어도 읽혀지지 않는다. 마음이 딴 데 가 있기 때문이다. 내 맘을 뺏아간 작업은 바로 내 일터 '충북민언련' 을 담은 책을 만드는 일이다. (내가 책을 만들었다니! 믿기지 않는다.) 작년부터 십 주년을 맞아 책을 만들겠노라고 큰 소리를 쳤더랬다. 다른 단체들이 흔히 내놓는 백서 형식이 아니라 이 책 한 권만 보면 충북지역 언론에 대해선 모든 걸 알 수 있는 그런 책을 만들겠노라 자신했다. 욕심이 아니라 그렇게 하고 싶었다. 십 년을 '제대로' 담고 싶었다. 이렇게 자신했던 이유는 바로 그동안 해 놓은 작업들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 단체 모든 활동을 글로 남겼다. 우리가 하는 행사부터 회원 만남에서 나온 이야기들까지 기사로 만들어 홈페이지를 통해 ..
마침 그날은 홍상수 영화 를 봤던 날이다. 혼자 대낮에 극장가서 영화를 봤다. 홍상수 영화는 꼭 보고 싶은데 같이 갈 사람도 마땅치 않고, 영화도 아무데서나 하지 않기에 가장 편한 방법은 혼자서 가는 것이다. 홍상수 영화는 내 식대로 쉽게 표현해 본다면 남자들이 얼마나 찌질한가에 대한 이야기다. 처음엔 짜증이 났더랬다. 뭐 이렇게 맨날 술을 먹나, 여자랑 한 번 자보고 싶어서 개수작들인가, 라는 생각만 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홍상수 영화는 참 재미났다. 그 찌질함을 확인하는 게 좋았고, 그들이 낮부터 술을 마시며 하는 쓸데없는(?) 이야기들에도 픽픽 웃움이 났다. 게다가 남녀 사이에 생각이 차이가 쾌 크다는 걸 홍상수처럼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얘기도 드물었다. 나는 (내가 남자도 아닌데?!) 홍상수 영화..
나는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했다. 고고미술사학과는 고고학과 미술사를 배우는 곳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과 이름을 들으면 되묻는다. 그게 뭐하는 학문이예요? 라고. 나는 그리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은 아니었다. 학과 공부가 재미없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재밌지도 않았다. 어려웠다. 미술사는 주로 한국미술사와 동양미술사, 중국미술사를 배우고, 한국미술사에서도 회화사와 도자사, 조각사 등 세분화 된 갈래를 배운다. 수업시간에 봐야 하는 그림 슬라이드가 정말 많았다. 그 당시 수업에서는 작품에 대한 의미나 해석보다는 시기별로 어떤 특징을 보였는지, 어떤 사조의 작품인지 등 지나칠 정도로 형식미에 치중했기에 우리 미술의 아름다움이나 고유함에 대한 철학적 기반에 대해 제대로 들여다보질 못했다. 물론 수업에 흥미를 ..
수희씨와 책읽기 - 피동형 기자들/ 김지영 지음 / 효형출판 “고객님 가격은 00 나오셨구요, 이 상품은 신상으로 파란색이시구요.…” 물건 살 때마다 물건이나 돈을 높이는 이상한 말을 참 많이 듣는다. 그때마다 “어 잘못 쓰는 표현인데…” 하고 생각하지만, 따로 얘기하진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쓰고 있기 때문에 일일이 말하기도 그렇고 유난스럽다 할까봐 꾹 참는다. 어디 이뿐인가. 전화를 끊을 때 “들어가세요” 라고 말하는 것도 잘못 쓰는 표현이라 배웠는데도 어느새 내가 그러고 있다. “네 어머니 들어가세요” 라고. 또 많이 쓰는 말 가운데 “좋은 하루 되세요” 라는 말도 잘못 쓰는 표현이라는 걸 알기에 꼭 ‘좋은 하루 보내세요’라고 쓰지만, 상대로부터 늘 듣는 말은 “좋은 하루 되세요” 다. 우리..
어두운 무대에 사람들이 저마다 몸을 움직인다. 온몸의 떨림이 객석까지 전달된다. 그러더니 어느새 시체 하나가 위에서부터 데굴데굴 굴러 떨어진다. 는 그렇게 시작했다. 첫 장면부터 강렬했다. 오이디푸스의 두 아들 폴로니케스와 에테오클레스가 통치권을 두고 싸우다 서로의 심장에 비수를 꽂아 넣은 채로 죽는다. 테베의 새로운 통치자 크레온은 반역자인 폴리니케스 시신을 흙에 묻지 말라고 그대로 들판에 버려둬 짐승들이 뜯어먹도록 하게 두라고 명령한다. 죽어서도 편히 쉴 수 없게끔 형벌을 내린 것이다. 안티고네는 오빠인 폴로니케스를 묻어주려고 한다. 크레온의 명령을 거부하고 묻어주자고 한다. 안티고네 여동생 이스메네는 크레온 명을 거부하면 큰 화를 입을 거라며 안티고네를 말리지만, 안티고네는 법을 지키는 것보다 오빠..
(공선옥 지음) 또 다시 오월이다. 올해 오월은 ‘임을 위한 행진곡’ 이 노래를 쓰지 말라는 이상한(?) 논란으로 시작했다. 해마다 이때쯤이면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기리기 위한 작품들이 선을 보인다. 작품만이 아니라 아직도 5.18에 대한 역사적 평가 운운하며 서로 편을 갈라 벌이는 논란도 끊이질 않는다. 나는 올해 오월을 맞이하기 전에 공선옥 소설 를 읽었다. 소설 한권 읽는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안타까움을 어쩔 수 없어 무언가라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공선옥 소설을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그가 언어를 다루는 감각이 얼마나 탁월한지를, 아픔을 그만큼 잘 그려내는 작가도 드물다는 걸 말이다. 는 ‘오월’을 이야기한다. ‘오월’ 의 또 다른 희생자..
어제는 어버이날이었다. 어버이날이니 어린이날이 이런 날들이 왜 있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하긴 하지만, 그래도 이날만큼은 어버이 은혜를 되새기라는 뜻에 평소보다는 마음을 쓴다. 부모님께 용돈을 보내드리고 전화 한통을 건다. 고맙다, 사랑한다는 말은 꺼내지도 않는다. 그런 말 솔직히 못하겠다. 그저 내 맘 아시겠지, 생각한다. 나이를 먹어가니 어버이날에 생겨나는 마음이 또 하나 있다. 어버이날 전날 밤, 잠자리에 누워 남편과 이런 저런 얘기를 했다. 남편이 말했다. 자신은 어버이날이라고 꽃 받는 거 솔직히 부럽다고. 나는 “뭘 그걸 부러워 해, 우리도 행복하잖아” 라고 대꾸했지만 당황스럽긴 했다. 사실 나도 의식하진 못했지만 어느덧 어버이가 된 친구들, 사람들이 늘어놓는 자랑을 부러워하는 마음이 없던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