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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이해할 수 있을까… 본문

수희씨 이야기/책읽기

아버지, 이해할 수 있을까…

수희씨 2014. 2. 13. 16:29

어느 날 갑자기 가족을 떠나버린 아버지. 박범신 소설 <소금>은 그런 아버지를 찾아가는 아니 이해하는 과정을 담은 이야기다.

그날은 시우의 생일이었다. 엄마는 집으로 일식집 주방장을 불러 요리를 시켜 생일 파티를 준비한다. 그런데 시우의 아버지 선명우는 그날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아버지가 가출하자, 아버지를 그림자로 만든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 버렸다. 시우와 언니들은 부잣집(?) 딸로 원하는 것을 모두 다 누리며 살아왔는데 아버지가 떠나자 모든 걸 잃게 된다. 사실 시우와 언니들, 시우의 엄마가 누려왔던 풍요는 아버지 선명우 등에 꽂은 '빨대' 덕분이었다. 사막 모래 바람을 참아내며 하루 몇 시간 밖에 못자면서 돈을 벌었고, 번듯한 회사의 간부까지 됐지만 선명우는 여전히 가난했다. 아내의 허영심은 그를 계속 내몰았다. 아내와 딸들은 그를 쑥맥’, ‘답답한 남자라 불렀고, '통장' 으로만 여겼다. 선명우의 형제들에게도 그는 '겨우 통장' 일 뿐이었다. 평생을 빨대가 되어, 통장이 되어 온몸을 빨리던 그는 췌장암 선고를 받는다. 괴로워하던 어느 날 그는 소금 자루를 보고 아버지를 떠올린다.


평생 염부로 살았던 할아버지는 자식만은 염주로 살게 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의 아들은 염전으로 돌아왔다. 한 때 큰 돈을 벌기도 했지만 아내가 죽자 다시 염전으로 돌아와야 했던 선명우의 아버지 선기철. 그런 아버지는 아들에게 집엔 얼씬도 하지말라며 아들을 내쫓다시피 당고모네로 공부시키러 보낸다. 가난한 형편에 어린 동생들까지 소금밭에 나와 대피질을 해야만 하는 형편을 외면할 수 없었던 그는 방학이 되자 차비라도 아껴 동생들에게 과자라도 사주겠다며 백리 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갔지만 '살기 위해' 쫓기듯 돌아와야 했다. 선명우는 아버지의 기대와 동생들의 희생을 발판으로 일어서야만 했다. 그는 백리 길을 걷다가 쓰러진 자신을 구해준 세희 누나, 자신에게 기꺼이 구멍난 런닝셔츠 가슴을 내주었던 그와 또 다시 꿈을 꾸고 싶었지만 이번엔 철부지 부잣집 딸 혜란에게 발목을 잡혔다. 선명우가 아버지에게 쫓기지 않았다면, 세희 누나와 소박하지만 사랑할 수 있었다면 그는 소금밭으로 돌아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오랜 세월을 돌아서 그는 다시 소금밭으로 돌아갔다. 선명우라는 이름을 버리고 김승민이 되어 아버지가 만들던 소금을 만들며 살고 있다. 딸에게 시의 친구라는 뜻을 가진 시우라는 이름을 붙여준 남자, 기타 하나만으로도 시를 노래할 수 있는 그런 남자 선명우는 김승민이 되어서야 자신을 찾을 수 있었다.

 

선명우는 말한다. 애들을 사랑하긴 했노라고, 하지만 자본이 만들어내는 거대한 소비 문명이 아이들과 그를 끝없이 이간질시켰다고, 아비가 빨아오는 단물이 넉넉하면 가정의 평화가 유지되고 단물이 막히면 가차 없이 해체되고 마는 가정을 너무나 많이 봐왔다고, 핏줄이라는 이름의 맹목적이고 소모적인 관계망에 다시 갇히고 싶지 않았다고, 자신이 가족을 버린 게 아니라 나로 인해 자신의 애들도 인생의 새로운 찬스를 맞은 거라고.

사라진 아버지를 찾아다닌 시우는 자신이 "엄마, 아빠" 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는 걸 깨닫는다. 그들이 누구인지, 어떻게 살았는지, 낯선 타인보다 오히려 멀게 느껴진다는 걸 알게 된다. 엄마, 아빠가 아니라 선명우, 김혜란 이라는 이름을 부르자 어머니 아버지에게 가는 가깝고 넓은 길이 뚫리는 느낌이라고 고백한다. 시우는 아버지를 찾는 과정에서 만난 시인에게 아버지의 옛 이야기를 들려주고 들으며 어느새 아버지를 이해했음을 알게 해준다.

 

박범신은 <소금>이 특정한 누구의 이야기가 아니라 동시대를 살아온 아버지들의 이야기라고 말한다. 자본의 폭력적인 구조가 가족을 버린 그와 그의 가족 사이에서 근원적인 화해를 가로막고 있다며, 소비의 단맛만을 쫓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아버지의 굽은 등을 깊이 들여다 본 적이 있느냐고 묻는다.

 

<소금>의 아버지 선명우는 자신을 찾아 나섰지만, 우리 사회 많은 아버지들은 오늘도 힘들게 살고 있다. 서울대 송호근 교수가 쓴 우리 시대 50대 아버지들의 이야기 <그들은 소리내 울지 않는다>에서도 그런 아버지들을 만날 수 있다. 베이비부머세대로 불리는 50, 전통적인 농촌가정에서 태어나 20대에는 산업화의 주력 부대로 불리웠던 그들, 그러나 IMF를 거치면서 직장에서 쫓겨나거나 간신히 살아남았고, 자영업에 나섰지만 또 다시 실패를 경험한 이들, 부모 봉양과 자식 교육과 결혼이라는 짐에서 벗어날 수 없는 아버지들의 생생한 목소리다.

 

내게도 아버지는 어려운 숙제다. 나는 아버지를 좋아하지도, 존경하지도 않는다. 한때는 아버지를 원망했다. 아버지는 우리 가족을 무척이나 힘들게 했다. 다른 아버지들처럼 더 책임감 있게, 성실하게 우리를 지켜주지 않았다. 그러나 나이를 먹고 나니 그 원망도 부질없게만 여겨진다. 시간이 좀 더 지나면 나아지는 것일까? 모르겠다. 나는 아버지를 이해하기가 참 힘들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이해하고 싶지 않은 게 솔직한 심정일지도 모른다. 그저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해 준 분이니 자식으로 해야 할 도리만 하겠다고 생각했던 내게 아버지를 이해해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을 걸어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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