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수희씨닷컴

단속사회, ‘우리’ 가 잃어버린 것과 찾아야 할 것 본문

수희씨 이야기/책읽기

단속사회, ‘우리’ 가 잃어버린 것과 찾아야 할 것

수희씨 2014. 5. 27. 14:32

세월호 시민분향소가 차려진 상당공원. 그 썰렁한 공간에 몇몇 사람들이 마주하고 앉았다. 각자가 생각하는 세월호 참사 문제를 박근혜 대통령 욕도 해가며 이야기했다. 한 두 시간이 지났을 뿐인데도 참 좋았다. 함께 이야기하니 답답한 마음도 좀 풀어지는 듯 싶었다. 그보다 함께 이야기 한다는 데에 어떤 결속감 혹은 유대감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때마침 읽고 있던 책 엄기호의 단속사회도 우리가 정말 제대로 소통하고 있는지, 누구에게 말을 걸어야 하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엄기호는 우리 사회를 단속사회로 표현한다. (사실 사회라는 말은 쓰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그가 보기엔 우리 사회는 사회라 부를 수 없는 지경이란다.) 단속 사회, 뜻부터 풀어봐야겠다. 엄기호는 책 제목에 쉴새없이 접속하고 끊임없이 차단한다는 설명을 붙였다. 그가 말하는 단속이란 낯선 것과 만나지 않으려 하는 것, 구경만 하려 하는 것, 공격당할까봐 두려워 스스로를 단속하는 것, 사적인 경험을 공적인 것으로 풀어내지 못하는 것 등을 말한다. 한마디로 단속사회란 사람이 성장할 수 없는 사회를 말한다. 성장하려면 끊임없이 낯설고 모르는 것과 부딪치고 만나며 경험을 확장해가면서 자신의 삶의 주체가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현실을 신랄하게 꼬집는다

 

단속사회가 제기하는 문제들을 따라가 보자. 우선 사람들이 자기가 속한 공동체에서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있는지에 대한 문제다. 우리 사회를 민주주의 사회라고 하는데, 민주주의는 구성원들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공론에 참여할 권리를 보장해야 하는 것이 기본이다. 정치공동체라면 이런 권리를 당연히 보장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아 보인다. 정치공동체가 파괴되지 않았느냐는 문제제기가 전혀 새삼스럽지 않은 이유다. 말할 수 있다는 건 언뜻 보면 당연한 권리인데도 사람들은 말하려 하지도 않고 들으려 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아예 말할 권리를 박탈당한 사람들도 많다. 왜 말하려 들지 않는가. 말하려 해도 들어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내 문제제기를 경청해주고 이를 해결해주려고 모색하는 관계 맺기가 잘 되지 않는다. 엄기호는 정치공동체가 파괴된 사회에서 사람들은 폭로하거나 침묵을 선택한다고 말했다. 침묵만이 자신을 보호한다는 걸 알게 되고 공적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것에 공포감마저 갖는다고 한다. 사람들은 사적인 일상에서 겪는 여러 어려움들을 공적인 언어로 바꾸어내는 공론과정에 제대로 참여하지 못한 채 그냥 살아가고 있다.

 엄기호는 이 책에서 우리사회가 말 걸지 않는 사회가 되었다고 지적했다. 말을 함으로써 관계를 맺고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어야 하는데 단속사회는 타자와 차단하는 속성을 갖는다는 것이다. 사회 제도나 시스템을 신뢰하지 않는 사회, 불통 사회에서 살아가기란 만만치 않은 일이다. 우리사회는 끊임없이 소통을 외친다. 그런데 정작 소통하기도 쉽지 않다. 불신과 적대가 가득하다. 사람들은 소통을 외치면서도 오프라인에서는 차단하기 바쁘고 SNS 공간에서 과잉 접속한다. 오프라인에서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온라인에서는 자신을 드러내지 못해 마치 안달이 난 듯이 상처를 드러내고 소비한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상처를 끝없이 말한다. 또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상처받았다며 힐링을 소비한다. 위로마저 돈으로 사는 시대가 됐다고 엄기호는 말한다.

엄기호의 주장은 나 역시도 오래전부터 고민해오는 것들이다. 우리는 가족, 학교, 직장, 사회 등 곳곳에서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제대로 관계를 맺고 있나 질문 해보자. 당신이 진정으로 소통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당신 주변을 둘러싼 많은 사람들이 있겠지만 제대로 소통하고 있는지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나도 그렇다. 내가 만나기 편한 사람, 좋은 사람들만 만나려고 한다. 그들만 만나도 배우는 게 많았고, 힐링이 된다고 생각했다. 이제 생각해보니 끼리끼리편만 나눴던 건 아닌가 싶다. 내가 만나려하지 않고, 만나보지도 않고 경계하고 편견을 버리려 하지 않는 부류에 사람들에게는 아예 관심조차 두지 않았으며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우리가 속한 공동체가 사람들이 제대로 말할 수 있고, 또 그 이야기를 제대로 나누며 그 안에서 제기된 문제를 잘 해결해나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앞서 과연 공동체가 있기는 한 건가 싶으니 답답하기도 하다. 엄기호는 우리사회를 이질공포증 사회라고 진단했다. 외부의 낯설고 모르는 것의 침입만을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 내부에서 공동체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문제제기도 귀찮아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니 성장할 수 없다는 얘기다. 명색이 하는 일이 시민단체 활동가인 나는 우리 사회에 제대로 말 걸기를 하고 있나라는 질문 앞에 부끄러웠다. 말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열심히 말하고 글을 쓰고 했지만 그런 활동이 제대로 소통되고 있는지 의문일 때가 많다. 더구나 비판도 받아 줘야 의미가 있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너무나 많다. ‘너는 떠들어라, 배째라식에 차단이 여러 차례 반복되다보니 이제 스스로를 단속하고, 내 말을 들어주는, 내가 말하기 편한 집단에 사람들에게만 얘기하고 있었던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성장이 가능하려면 자신이 제대로 가고 있는지 아닌지를 점검하기 위해서는 멈추고 뒤돌아봐야 하며, 나와 너가 만나 우리가 될 수 있어야 한단다. 성장이란 우리라는 관계의 끊임없는 확장을 의미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경청이 필요하다고 했다. 경청이란 단순히 타자의 말에 귀 귀을이는 것이 아니란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 내가 생각해보지 못한 이야기를 듣는 것이란다. 말하지 못하던 것, 말하지 않은 것, 말할 수 없었던 것을 말할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 곧 경청이며, 그 과정에서 경험을 확대해나가고 서로 배우며 성장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함께 잘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 공동체를 건강하게 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접속해야겠다. 사람들 속에서 말하고, 말할 수 있도록 이끌고, 배우고, 그렇게 을 만들어내야겠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