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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희씨 이야기/삶의 향기

삶과 죽음, 그리고 '집'을 생각하게 하는 영화를 보다

수희씨 2012. 4. 6. 15:34

나는 예전에 건축 잡지에서 잠시 일을 했다. 대학에서 한국 건축사를 들은 게 전부고, 유명한 절집을 많이 다녀본 것 외에는 아는 게 없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건축가들을 만나면서 느끼는 게 참 많았더랬다. 그냥 집, 건물이 아니라 공간을 만들어내는 놀라운 솜씨를 보며 건축가들은 예술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또 사람이 살아야 비로소 완성되는 예술이니 더 의미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건축가들이 만든 집을 취재하면서 매번 절망스럽기도 했다. 나는 저런 집에서 살 수 없다는 걸 알아서였을까! 나의 반지하 월세방과 건축가들이 멋지게 만들어낸 집의 차이란.... 절대로 내것이 될 수 없는 무언가를 욕망하게 하는 불편함이었다. 그때는 어렸으니 더했을 것이다.

건축가 정기용, 명성은 알았지만 만나 본 적은 없다. 얼마전 영화로 만들어졌다기에 보고 싶어졌다. 건축가가 말하는 삶, 건축을 듣고 싶었다. 실로 아주 오랜만에 말이다.


정기용은 참 멋있는 사람이었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집, 자연과 어우러지는 집, 아이들의 상상력을 키워주는 집을 지었다. 그는 건축을 통해 삶을 제시해주는 건축가였다. 특히 그가 추구한 공공건축은 남달랐다. 권위적이고 비싼 건물이 아니라 지역주민들이 원하는 그 무엇을 최대한 담아내기 위해 노력했다. 정기용의 건축세계를 조금이나마 들여다보면서 위안을 얻었다. 그래 내가 느꼈던 불편함은 잘못된 생각이지! 건축이란 우리 삶을 담아내는 것이라는 그 당연한 사실을 정기용을 통해 다시 느꼈다.

<말하는 건축가>는 정기용이 죽기 전의 모습을 담고 있다. 삶을 마감하는 준비를 하는 건축가! 죽어서 하는 회고전이 아니라 살아서 전시를 하고 싶다며 모든 것을 정리하는 정기용의 모습은 담담했다. 정기용은 나이들수록 철학이 필요한거 같다며 죽는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말하는 건축가>는 정기용을 통해, 정기용의 건축 세계를 통해 삶과 죽음을 말하고 있다. 삶과 죽음을 말하는 또 한편의 영화 <해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평생 아내에게 큰 소리만을 치고 살았을 것 같은 남편, 꽃을 좋아하는 아내를 한심하게 생각하는 남편은 이제 달라지려고 한다. 아내랑 다정하게 노년을 보낼 생각을 하며 조금씩 변화한다. 그런데 아내가 암이란다. 게다가 살 날도 얼마남지 않았다. 별 효용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조금이라도 더 살리려고 항암치료를 받게 하지만 결국 포기한다. 남편은 말한다. "여보 우린 운이 아주 좋아! 당신과 함께 세상을 떠나고 싶어" 아내는 안된다고 하지만 남편의 마음을 알기에 함께 하기로 한다. 남편은 아들에게 쓰는 편지를 통해 " 죽음을 두려워 하며 살고 싶지 않다. 나는 행복한 삶을 누릴 권리가 있다" 라고 자신이 누려야 하는 행복앞에 당당했다.

마지막을 준비하는 남편은 온 집안을 아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꽃으로 장식하고 정돈을 한다. 그리고 부부는 집으로 돌아와 서로를 말없이 안아준다. 할말이 많다는 남편에게 아내는 말 안해도 안다며 그냥 안아달라고 한다. 항암치료를 받으며 힘겹게 버티던 아내는 계속해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한다. 아내에게 집은 그냥 집이 아니다. 자신의 삶이 들어 있고, 지난 추억이 있고, 사랑하는 남편과 함께 한 공간이다. 영화의 마지막은 부부가 자전거로 나란히 길을 떠나는 모습이었지만.....부부가 오래도록 정들었던 공간, 사랑했던 집에서 마지막을 맞았을 것이다.

보기에 화려하고 멋지다고 좋은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삶을 보여주는 집, 삶의 철학이 반영된 집, 이런 집을 짓는 건축가, 이런 집처럼 삶을 사는 사람들....그렇게 살다가 스러져간 사람, 자연스러운 거라는 걸 알면서도 짠한 마음이 들었다.

<말하는 건축가>, <해로> 두 영화는 어쩌면 같은 이야길 하고 있는 듯 했다. 삶과 죽음, 그리고 이를 담고 있는 집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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