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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사회에 화차가 던지는 질문들... 본문

수희씨 이야기/삶의 향기

자본주의 사회에 화차가 던지는 질문들...

수희씨 2012. 3. 17. 20:20
어느 날 결혼하기로 한 여자가 사라졌다. 왜일까? 어떤 이야기가 숨겨져 있을까, 궁금했다.그래서 영화 화차를 봤다. 영화를 보는 내내 숨이 막혀왔다. 그녀는 정말 잘 못한 게 없었다. 부모님의 빚 때문에 쫓기고 쫓기다 더이상 그 이름으로 살 수 없기에, 다른 이의 생을 가로챘다. 그러다 또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영화는 정말 흥미진진했다. 내친김에 원작 소설도 읽었다. 미야베미유키의 화차, 1992년작이다. 나는 평소 미스테리나 추리물을 좋아하지 않았기에 이름 조차 처음 들어보는 작가였다. 기사를 보니 변영주 감독은 원작을 읽고 그 매력에 빠져 영화를 만들기로 했다하고, 미야베 미유키라는 작가가 일본에서는 꽤나 알아주는 작가란다. 원작 역시 재밌었다. 보통 원작을 토대로 만든 영화가 원작에 미치지 못하다는 비판을 받는 반면 영화 화차는 원작과는 또 다른 매력을 보여주면서 성공한 게 아닌가 싶다.

 


사실 영화평이나 책에 관한 이야길 하고 싶었던 게 아니다. 영화도 보고 원작까지 읽고 난 후에 많은 질문들이 떠올랐다.

우선 사람이라는 게 무엇인가, 우리의 존재는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였다. 이름, 주민번호, 신용카드, 직장, 가족관계 이런 정보의 나열들이 과연 나란 존재를 제대로 설명해주는 건가 하는 의심을 다시 하게 했다. 또, 우리가 흔히 도시의 익명성을 많이 이야기 하는데, 거대한 도시 속에서 어떤 이 하나 아무도 모르게 없어진다 해도 세상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또 돌아가겠지 하는 생각들이 강렬한 이미지로 다가왔다.  

원작을 보니 1980년대부터 90년대 초반까지 일본 사회가 금융시장이 키워 온 환상으로 인해 어떤 거품이 일어났는지를 알게 해줬다. 한 10년쯤 차이가 나는 것일까. 대한민국도 1997년 IMF 이후 경제 문제가 심각해졌다. 무분별한 카드 발급이 소비를 부추기다가 결국에는  수많은 신용불량자를 만들어냈다. 처음엔 욕심나는 물건들을 할부로 신용판매로 살 수 있다는 데에 편리를 느꼈고, 점점 더 갖고 싶은 물건을 이 작은 플라스틱 카드하나면 손에 넣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러다 현금 대출까지 받게 되면서 사람들은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카드 돌려막기, 사채업자들의 추심, 이런 풍경이 우리에게도 익숙하지 않은가. 요즘도 티비를 틀면 빠른 시간 안에 네가 원하는 현금을 줄 수 있다는 광고가 넘쳐나고 있다. 

화차의 주인공 신조교코, 차경선은 이런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였다. 비록 본인의 사치가 아니라 부모님의 빚 때문에 사채업자에게 쫓기고 팔려가고 이용당하고 버려졌지만....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금융시장의 환상에 기댄 피해자들이었다.  " 현대사회의 신용대출 파산은 공해 같은 거다. 금융시장이란 애당초 환상이다. 현실사회의 그림자로서의 환상. 한계가 있다. 정상적인 크기 보다 부풀려졌다. 실제가 없다 " 고 원작에서도 지적하고 있다. 처음엔 사람들의 편리를 위해 만들어졌을 화폐나 신용카드가 이제 사람들을 잡아먹고 있는 셈이 되버린 것이다. 지나친 비약일까?

잠시, 나를 돌아본다. 나 역시 경제활동을 한다. 만일 나 혼자서 살아가야 한다면 나 역시 심각한 상태가 되버릴 것이다. 집을 구하는 일, 먹는 데에만 돈을 쓴다고 해도 턱없이 모자랄 것이다. 결혼을 하고 남편과 함께 경제 활동을 하면서 계획대로 소비를 하고 저축을 하고 생활을 하기에 버티고 있는 것이다. 어려운 부분을 기댈 수 있어 모른척 하기도 한다.

욕망을 부추기고, 소비를 통해서만이 자신의 존재가 드러나는 것 같은 이런 사회를 살면서 우리는 언제든지 휘둘릴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내 삶의 가치가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다짐하고, 실천하는 삶이 아니라면 이 거대한 자본주의 사회의 거품과 환상에 기대 발버둥치는 나약한 한 인간에 불과할 것이다. 또 몸이 아파서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하고, 물가가 계속 오르고, 아무리 저축을 해도 살 집을 구할 수 없게 되면 또 이 사회에서 버림받게 될 수도 있다. 아니 포기하고 싶어질 수도 있겠다. 자신의 삶을 부정하고 싶을 수도 있을 것이다. 가능만 하다면 안정적인 누군가의 삶을 훔쳐서 살고도 싶을 것이다.

책이나, 영화 그 어떤 미디어든 우리 삶의 현실을 말하고, 생각해보게 해준다는 것은 큰 미덕이다. 하루 하루 자본주의 사회, 신자유주의라는 괴물의 희생양으로 살고 있으면서 별다른 상상을 하지 못 했다.  화차가 던지는 질문은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해야 한다. 어떻게 살아야 할 지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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