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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수희씨 이야기/책읽기 (54)
수희씨닷컴
하릴없는 오후 가끔씩 내가 썼던 글들을 읽을 때가 있다. 분명히 내가 쓴 글인데도 새롭기도 하고 낯설기도 하고 놀란다. 기대치가 낮아서일까. 나는 내가 쓴 글을 보고도 감동할 때도 있다. ‘신이시여, 정녕 내가 이글을 썼단 말인가’, 까지는 아니지만, ‘아니 내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지?, 이 표현은 참 기막히게 좋다’, 뭐 이 정도다. 비문을 발견할 때는 얼굴도 화끈거린다. 내가 쓰는 글은 대부분 ‘잡글’이다. 학술적인 글도 아니고 어떤 이야기를 창작한 글도 아니다. 그저 내 삶을, 내 생각을 쓴다. 그렇다. 난 작가는 아니다. 그래도 내게 글쓰기는 참 중요하다. 나는 매일매일 글을 쓴다. 아침에는 신문을 읽고 정리하는 글을 쓴다. 업무와 관련한 일이다. 본격적인 미디어비평이라 하기엔 수준이 낮은 글..
어느 날 갑자기 가족을 떠나버린 아버지. 박범신 소설 은 그런 아버지를 찾아가는 아니 이해하는 과정을 담은 이야기다. 그날은 시우의 생일이었다. 엄마는 집으로 일식집 주방장을 불러 요리를 시켜 생일 파티를 준비한다. 그런데 시우의 아버지 선명우는 그날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아버지가 가출하자, 아버지를 그림자로 만든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 버렸다. 시우와 언니들은 부잣집(?) 딸로 원하는 것을 모두 다 누리며 살아왔는데 아버지가 떠나자 모든 걸 잃게 된다. 사실 시우와 언니들, 시우의 엄마가 누려왔던 풍요는 아버지 선명우 등에 꽂은 '빨대' 덕분이었다. 사막 모래 바람을 참아내며 하루 몇 시간 밖에 못자면서 돈을 벌었고, 번듯한 회사의 간부까지 됐지만 선명우는 여전히 가난했다. 아내의 허영심은 그를 계..
이달에는 제대로 책 한권을 읽지 못했다. 책을 손에 들어도 읽혀지지 않는다. 마음이 딴 데 가 있기 때문이다. 내 맘을 뺏아간 작업은 바로 내 일터 '충북민언련' 을 담은 책을 만드는 일이다. (내가 책을 만들었다니! 믿기지 않는다.) 작년부터 십 주년을 맞아 책을 만들겠노라고 큰 소리를 쳤더랬다. 다른 단체들이 흔히 내놓는 백서 형식이 아니라 이 책 한 권만 보면 충북지역 언론에 대해선 모든 걸 알 수 있는 그런 책을 만들겠노라 자신했다. 욕심이 아니라 그렇게 하고 싶었다. 십 년을 '제대로' 담고 싶었다. 이렇게 자신했던 이유는 바로 그동안 해 놓은 작업들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 단체 모든 활동을 글로 남겼다. 우리가 하는 행사부터 회원 만남에서 나온 이야기들까지 기사로 만들어 홈페이지를 통해 ..
마침 그날은 홍상수 영화 를 봤던 날이다. 혼자 대낮에 극장가서 영화를 봤다. 홍상수 영화는 꼭 보고 싶은데 같이 갈 사람도 마땅치 않고, 영화도 아무데서나 하지 않기에 가장 편한 방법은 혼자서 가는 것이다. 홍상수 영화는 내 식대로 쉽게 표현해 본다면 남자들이 얼마나 찌질한가에 대한 이야기다. 처음엔 짜증이 났더랬다. 뭐 이렇게 맨날 술을 먹나, 여자랑 한 번 자보고 싶어서 개수작들인가, 라는 생각만 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홍상수 영화는 참 재미났다. 그 찌질함을 확인하는 게 좋았고, 그들이 낮부터 술을 마시며 하는 쓸데없는(?) 이야기들에도 픽픽 웃움이 났다. 게다가 남녀 사이에 생각이 차이가 쾌 크다는 걸 홍상수처럼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얘기도 드물었다. 나는 (내가 남자도 아닌데?!) 홍상수 영화..
나는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했다. 고고미술사학과는 고고학과 미술사를 배우는 곳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과 이름을 들으면 되묻는다. 그게 뭐하는 학문이예요? 라고. 나는 그리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은 아니었다. 학과 공부가 재미없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재밌지도 않았다. 어려웠다. 미술사는 주로 한국미술사와 동양미술사, 중국미술사를 배우고, 한국미술사에서도 회화사와 도자사, 조각사 등 세분화 된 갈래를 배운다. 수업시간에 봐야 하는 그림 슬라이드가 정말 많았다. 그 당시 수업에서는 작품에 대한 의미나 해석보다는 시기별로 어떤 특징을 보였는지, 어떤 사조의 작품인지 등 지나칠 정도로 형식미에 치중했기에 우리 미술의 아름다움이나 고유함에 대한 철학적 기반에 대해 제대로 들여다보질 못했다. 물론 수업에 흥미를 ..
수희씨와 책읽기 - 피동형 기자들/ 김지영 지음 / 효형출판 “고객님 가격은 00 나오셨구요, 이 상품은 신상으로 파란색이시구요.…” 물건 살 때마다 물건이나 돈을 높이는 이상한 말을 참 많이 듣는다. 그때마다 “어 잘못 쓰는 표현인데…” 하고 생각하지만, 따로 얘기하진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쓰고 있기 때문에 일일이 말하기도 그렇고 유난스럽다 할까봐 꾹 참는다. 어디 이뿐인가. 전화를 끊을 때 “들어가세요” 라고 말하는 것도 잘못 쓰는 표현이라 배웠는데도 어느새 내가 그러고 있다. “네 어머니 들어가세요” 라고. 또 많이 쓰는 말 가운데 “좋은 하루 되세요” 라는 말도 잘못 쓰는 표현이라는 걸 알기에 꼭 ‘좋은 하루 보내세요’라고 쓰지만, 상대로부터 늘 듣는 말은 “좋은 하루 되세요” 다. 우리..
(공선옥 지음) 또 다시 오월이다. 올해 오월은 ‘임을 위한 행진곡’ 이 노래를 쓰지 말라는 이상한(?) 논란으로 시작했다. 해마다 이때쯤이면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기리기 위한 작품들이 선을 보인다. 작품만이 아니라 아직도 5.18에 대한 역사적 평가 운운하며 서로 편을 갈라 벌이는 논란도 끊이질 않는다. 나는 올해 오월을 맞이하기 전에 공선옥 소설 를 읽었다. 소설 한권 읽는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안타까움을 어쩔 수 없어 무언가라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공선옥 소설을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그가 언어를 다루는 감각이 얼마나 탁월한지를, 아픔을 그만큼 잘 그려내는 작가도 드물다는 걸 말이다. 는 ‘오월’을 이야기한다. ‘오월’ 의 또 다른 희생자..
이 책 은 너무나 재미나다. 읽다가 깔깔깔 웃다가 뒤로 넘어갈 정도다. 그런데 실상은 아픈 이야기다. 누군가에게 거절당해본 사람들은 안다. 거절당한 그 순간이 얼마나 쓰라린 지를…. 특히 글은 더하다. 내 모든 걸 쏟아부었는데 외면받는다면 정말 미칠 것이다. 이 책은 편집자가 소설 원고를 거절하는 99가지 방법을 담고 있다. 가장 기본적인 거절 방법은 아마도 “원고는 잘 받았고, 검토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원고를 출간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행운이 있길 빈다”정도 아닐까 했는데, 99가지라니 놀랍다. 을 쓴 카밀리앵 루아는 고백한다. 첫 소설을 내기 위해 야심차게 출판사에 원고를 보내지만 세 달이 흘러도 묵묵부답이다. 모욕감은 극에 달하지만 어느새 자존감을 되찾고 다른 출판사, 그러니까 비교적 만만한 출..
여전히 어리다고만 생각했는데 내 나이도 어느덧 마흔이다. 마흔, 참 당혹스럽다. "뭐 아직 만으론 38세야" 라고 외친다한들 달라질 게 없다. 마흔을 맞고 보니 또 다시 부딪치게 되는 질문이 한 둘이 아니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건가 혹은 이게 사는 건가 싶은 허무맹랑한 질문에서부터 나는 무엇을 성취했나, 내 꿈은 무엇이었나, 나는 자유로운가.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등등 복잡하다. 한마디로 싱숭생숭하다. 뭐 특별한 이유 없이 마음이 푹푹 꺾인다고 해야 할까. 좀 그렇다. 얼마 전 장석주가 쓴 책 를 읽었다. 서점에 나가보니 제목에 ‘마흔’이 들어간 책들이 참 많았다. 마흔엔 어쩌구 저쩌구 하는 책들이다. 예전에 장석주 책을 잘 읽었던 기억이 나 선뜻 집었다. 장석주 글은 여전히 좋았다. 는 옆에 두고..
나는 좀 미련하다. 꼭 겪어봐야 느낀다. 그렇다고 모든 걸 다 경험해볼 수는 없는 일이다. 이 때문에 여러 미디어를 이용해 세상을 배운다.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을 여러 매체를 통해 보고 듣고 읽지만 세상을 제대로 보여주는 게 맞는지 의심이 들 때가 참 많다. 게다가 요즘처럼 언론 형편이 좋지 않을 때에는 더더욱 그렇다. 사회를 감시하고 고발해야 하는 언론 역할을 생각하면 만족스럽지 않은 경우가 너무나 많다. 그런데 가끔 보석 같은 기사를 만날 때도 있다. 이 보도했던 노동OTL시리즈 기사도 그랬고, 가 보도했던 청주운천동 피란민촌 사람들 이야기가 그랬다. 이들 기사를 보면 단순한 보도가 아니라 기자가 현장에 뛰어들어 보고 듣고 느낀 이야기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런 종류 기사들을 르포 기사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