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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희씨 이야기/책읽기

가족은 날마다 자란다

수희씨 2017. 6. 23. 11:02


솔직히 하나도 힘든데(!) 셋이나 키우다니아이 셋을 키우는 이기호 소설가의 가족이야기 <세살 버릇 여름까지 간다>를 읽었다. 이 책은 가족소설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소설은 넌픽션인데 이 글은 픽션이다. 작가의 삶을 그대로 옮겼다. 작가는 자신에게 가족이라는 이름 자체가 꼭 소설의 다른 말인 것 같다며 가족소설이라는 타이틀을 붙였다고 말했다.

 

픽픽 웃음도 나고 코끝도 찡해진다. 일상에 순간순간들을 어쩌면 이렇게 잘 담아냈을까 싶을 정도로 글이 참 맛나다. 그리고 작가의 아이들 이야기도 너무나 재밌다. 사랑에 빠졌다는 첫째 아이의 여자 친구 이야기는 배꼽을 잡으며 웃었다. 작가의 아이디어인지 출판사의 아이디어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들을 너무나 잘 아는 듯 싶다. 아이가 욕실에서 물장난하며 나오지 않겠다고 한참 떼를 썼다. 달래도 말을 듣지 않기에 물장난 하게 내버려두고 나는 욕실 문 앞에 주저 앉아 책을 마저 읽고 있었다. 그런데 책 중간에 스티커가 한 장 들어있는 게 아닌가. 스티커로 아이를 유혹해 욕실에서 데리고 나올 수 있었다.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그 스티커들은 우리 안방 벽면을 장식했다.

 

이기호 소설가의 아내는 참 속 깊은 사람처럼 보인다. 그녀는 셋째 아이를 출산하는 날에도 남편에게 글이나 쓰라며 거짓말을 하고, 시아버지가 편찮으시자 한푼 두푼 모은 적금 통장을 말없이 꺼내놓는 여자다. 남편이 혼자 여행을 가는 미안한 마음에 두고 간 돈 30만원을 머나먼 나라의 아이가 암소와 염소를 사서 꿈을 키울 수 있게끔 남편 이름으로 후원금을 보내는 그런 여자다. 토요일 하루 만이라도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다며 카페에서 읽을 책을 챙겨 나가더니 다들 아이와 함께 나왔더라며 서둘러 집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소설가의 아내는 그 보다 여덟 살이나 어리다고 하는데 왜 이리 어른스러운 것일까. 아이를 셋이나 낳았기 때문일까. 이기호 소설가는 아내와의 나이차가 많아 혹시나 세대 차이를 느끼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아이가 생기자 여덟 살이란 나이차는 사라지고 그저 빤한 아빠와 엄마가 되었을 뿐이라고 털어놓는다. 한 번도 반말을 한 적 없던 아내가 서슴없이 이름을 부르고 심부름을 시키고 그랬단다. 그래도 작가는 반항한 적도 없었으며, 억울한 것도 없고 부당하다는 마음을 가져본 적 없다고 말한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여자의 모습을 옆에서 보자니 세상 모든 여자들은 남자들 보다 한 뼘 정도는 더 위대하구나,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시간들이었다고 썼다.

 

이 남자 조금 기특하다. 사실 기특하기만 한 건 아니다. 작가는 솔직하다. 아니 아내를 이해하려고 마음 쓰는 남편이지만 전형적인 한국 남자 모습도 보여준다. 아내가 당신은 혼자 글이나 쓰라며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으로 가자 총각 된 거 같다며 좋아했던 에피소드도 있고, 아내에겐 호기롭게 당신 없이도 아이들을 잘 돌 볼 수 있다고 큰 소리 뻥뻥 쳐놓고 쩔쩔매더니 일찍 돌아온 아내에게 너무나 고마워 무릎이라고 꿇고 싶었다고도 털어놓았다. 글 곳곳에서 아내를 애처로워하고, 고마워하고, 뒤늦게라도 깨우치고 부끄러워하니 밉지가 않다.


내가 너무 감정 이입을 하면서 이 책을 읽었나보다. 괜히 다른 부부 사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부부와 비교하는 바보짓도 했다. 나는 요즘 남편에게 불만이 좀 많다. 오늘 낮에도 글 좀 써보겠다고 아이와 함께 놀이터에 내보냈는데, 아이가 엄마를 찾는다며 채 30분을 채우지도 않고 돌아왔다. 조금만 더 놀다오면 좋으련만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냐고 물으려다 참았다. 그러나 결국 부부의 날이라고 하는 오늘 우린 아이 앞에서 다퉜다. 아이 앞에선 절대 싸우지 않겠다, 큰소리 내지 않겠노라 다짐 또 다짐했는데 내 자신이 실망스럽고 남편이 원망스러웠다. 아이도 뭔가 분위기가 이상했다고 느꼈는지 눈물을 흘리며 아빠, 엄마 손을 맞잡는다. 아이 보기가 참 부끄럽다. 이렇게 아이 덕분에 내가 또 자라는 구나 생각했다. 아이 덕분에 울고 웃는 날이 많아졌다. 행복하기도 하고 힘들기도 하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그 유명한 안나카레리나의 첫 구절이다. 나는 행복한 가정이나 불행한 가정이나 엄마가 버티고 있어서 그나마 존재하는 거라고 말하고 싶다. 함께 실천해야 한다. 남편에게 책 이야기를 핑계로 다시 손을 내밀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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