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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희씨 이야기/삶의 향기

가을 속으로 걸었다

수희씨 2011. 10. 24. 13:50
가을 속으로 달려갔다

잠자리에 들어야 할 시간, 고속도로에 올랐다. 친구들과 함께 떠난 가을여행이다. 주말도 아닌 평일 저녁, 모든 일을 마치고 서둘러 짐을 싸고 집을 나섰다. 이내 어둠은 몰려왔고, 마음은 들뜨기 시작했다. 고속도로를 벗어난 차는 구불구불 국도를 따라 달린다. 헤드라이트 불빛에 길 옆의 자작나무 숲도 보였고, 쏟아지는 밤하늘의 별도, 바람도 상쾌했다. 4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울진군 두천리. 어둠속에 불밝힌 민박집에 여장을 풀었다.


금강소나무 숲길을 따라

하늘은 맑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날이 산행하기엔 더 좋다는 말이 들여와 위로가 됐다. 울진군 두천리에서 시작해 소광2리에서 끝나는 금강소나무 숲길은 환경보호를 위해 제한된 인원만 탐방할 수 있다고 한다. 숲해설가의 설명을 들으며 길을 나섰다. 그냥 숲길이 아니라 고개를 넘는 길이다. 여섯개의 고개를 넘었다. 그 옛날 보부상들이 무거운 짐을 지고 다녔던 길이란다. 한참을 오르니 드디어 하늘로 쭉쭉뻗은 금강 소나무의 자태가 드러난다. 사실상 금강소나무 길은 적은 구간이긴 하지만 이 숲을 대표해 그렇게 부른단다. 금강소나무는 우리나라의 주요 문화제에 쓰이는 목재이기도 하다. 틀어짐이 없는 나무의 성질 탓에 귀한 곳에만 쓰이는가보다. 이길을 반백년 넘게 오르내렸을 숲해설가는 금강소나무숲길의 역사를 알 수 있는 글을 발견해 도지사 표창까지 받았다고 금강소나무 숲 해설에 곁들였다. 그에겐 더 특별한 숲이 되었나보다. 


산속은 더 붉더라

점심을 먹을때쯤부터 부슬비가 내렸다. 이제까지 걸어온 만큼 또 걸어가야 하는데 비가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포기하면 반드시 후회할거라며, 이제부터가 진짜라는 해설사들의 권유를 따랐다. 그렇다. 길고 긴 산길을 비를 맞으며 걷는다. 저멀리서는 안개도 다가왔다가 사라지곤 한다. 바람에 나뭇잎들이 흔들리며 춤을 춘다. 노랗고, 빨갛고, 이제는 다 타버린 듯한 열정들이 뚝뚝 떨어져 발 밑에 깔린다. 산 밖에서 보면 가을 단풍이 제대로 보이질 않는데 산속에서 보면 참 선명하지, 하고 친구가 말했다. 무엇이든 그러할 것이다. 안과 밖에서 보이는 모습은 다를 것이다. 진정을 알려면 안으로 안으로 힘들어도 파고들어야 한다는 걸 산이 가르쳐준다. 


걸으며 생각했다

가을 속을 걸으며 나는 어디쯤을 걷고 있는지 생각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다 담아두고 싶을 만큼 아름답기만한 숲속에서 눈도, 마음도 트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숲냄새, 바람소리, 그리고 땀과 함께 흐르던 비, 그 속에서 깔깔댔던 마음과 웃음에 노곤함마저도 달았다. 어느날 문득 떠날 수 있다는게, 그럴 수 있었다는 게 또 함께 할 수 있었다는 게 행복했던 가을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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